별이는 별이 마음대로 해, 엄마는 엄마 길 갈 거야. (1)
아이가 두 돌이나 세 돌쯤 될 무렵, 엄마들이라면 밖에서 집에 안 간다며 뻗대고 고집부리는 아이를 두고 허리춤에 손을 딱 올린 채 한 번쯤 뱉어보는 국룰 대사가 있다.
"OO이는 여기서 살던지. 엄마는 갈 거야."
나는 몰랐다. 그 대사를 이렇게 오랫동안 갖가지 버전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예전에 언급했듯, 우리 아이는 혼자서 수학공부를 해보겠다며 학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다. 자기주도학습이 체득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우리 집만 이런가.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아서 매달리는 사람이 어디 흔할까. 대부분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갖가지 이유로 하기 싫고, 이런저런 꾀가 자꾸 나는 법이다. 우리 아이도 그렇다. 문제는 아이가 집에 와서 수학공부가 하기 싫어질 때 즈음은 보통 오후 세네시 무렵이고, 나는 그때 회사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창 일할 때 전화가 울린다. 아이 전화는 만사를 제쳐두고 받는 것이 남편과 나의 원칙이라,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대개 수학 문제집 풀기 싫은 꾀가 나서라는 걸 대충 예상하면서도 복도로 뛰어나가 전화를 받는다. 아이는 '오늘은'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오늘 체육시간에 너무 열심히 뛰어서 다리가 아파, 더운데 걸어왔더니 쉬고 싶어, 비가 와서 온몸이 젖어서 샤워해야 하는데 오늘은 씻고 쉬면 안 돼, 아까부터 유튜브 생각이 너무 간절한데 조금만 보다가 문제집 풀면 안 돼, 등이 대표적이다.
어제도 오후 세 시 사십 분이 지날 무렵 전화가 울리길래, 딱 수학문제집 얘기일 줄 알았다.
"엄마, 피아노 학원에서 집에 거의 다 왔는데, 선생님이 내가 카디건을 두고 왔다고 전화하셔서 다시 학원까지 갔다 왔어."
"그래? 우리 별이 힘들었겠네."
"응. 햇빛이 너무 따가운데 다시 거기까지 걸어갔다 왔더니 나 너무 힘들어."
"그렇구나. 씻고, 더우면 에어컨 좀 켜."
"그런데에, 나아, 오늘은 수학 문제집 풀기 전에 로블록스(컴퓨터 게임) 좀 하면 안 될까? 스트레스가 쌓였어."
하아. 스트레스는 내가 너 때문에 받는 거고, 이 녀석아, 소리가 목구멍까지 밀려왔지만 참는다. 아이랑 전화로 실랑이를 하기에는 등 뒤에 두고 나온 업무가 급하다.
"엄마는 할 일 다 하고 노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별이가 정 바로 집중 못하겠으면 15분만 놀다가 간식 먹고 그 다음에는 할 일 해."
전화를 끊고 업무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생각이 꼬리를 물며 점점 마음이 복잡해졌다.
매번 이렇게 의지력 없이 할 일을 뒤로 미루는 태도는 고쳐야 하는데.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에는 나는 회사에 나와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 같긴 한데, 낮에는 놀게 두고 저녁에 공부를 봐주야 하나. 그렇다고 아직 어린아이를 저녁 먹고 자기 전까지 붙들고 공부하게 하는 것은 좀 그런데. 이 녀석은 그러니까 학원이라도 다니라니까 안 다닌다며 고집은 쇠고집이고.
아니지, 이게 공부를 하네 마네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계획을 잘 지키는 생활태도의 문제인 것 같은데. 꾀가 나서 전화할 때마다 이렇게 받아주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딱 잘라서 무조건 할 일 먼저 하라고 냉정하게 굴기엔, 혼자 집에 들어와서 응석 부릴 어른도 없이 낮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딱한 마음이 앞서서 모질게 말하지 못하겠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