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초반에 혼외자를 낳은 아버지를 알고, 그 직후 비명횡사한 어머니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뜬 할아버지를 연달아 잃고, 이후에는 다만 할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오직 죽은 모친의 한을 풀어주려 살아온 젊은 날들 속의 희영은 연애조차 쉽지 않았다. 하나의 목표만으로 산다는 것은 가끔은 숨이 막히는 짓이었다. 그리하여 희영은 그 엄마의 엄마만 계시지 않다면 그냥 되는대로 살 텐데, 아니면 그냥 죽어버려도 될 텐데, 매우 드물었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던 그녀이기에 이복동생이 제 몸에 칼을 댔다는 말에 오히려 그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눈물을 찍으며 전해준 태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요한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오직 남편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엄마는 그냥 아버지 뒤를 잇게 하려고 공부만 시켰지 해외로 내보내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버지도 다른 여자를 통해서라도 아들자식을 얻으려고는 안 했을 텐데, 그랬다면 엄마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그랬으면 할아버지도 좀 더 사셨을 텐데… 그런 자책감과 죄의식에 시달리며, 청소년기의 희영은 그저 공붓벌레였었다.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고서는 살 가치조차 없다고 희영은 생각했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희영은 그늘이 없는 척, 사교적이고 착한 척,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가면을 내려놓고 솔직해지는 대상은 그때에도 현재의 남편뿐이었다.
아픈 마음을 갑작스러운 신경질로써 드러내는 연인을 조용히 보듬어주는, 풍요롭고 사랑마저 넘치는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덕분인지 좀처럼 보기 드문 좋은 남자였으나 희영은 자신이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자신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고약스러운 성질 때문에 결국에는 결혼을 망치고 말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그런 상태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상상 역시 끔찍했다. 그래서 이른바 결혼적령기의 희영은 남편의 청혼을 거절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다시 만난 남편에게 이미 자식이 있다는 것에 희영은 오히려 안도했다. 유언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기폭제이긴 했어도, 이미 새파란 젊음을 떠나보내고 난 뒤였던 희영은 이혼이나 혼자로 되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는 어른스러워졌으므로 그제야 웨딩마치를 울릴 수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충격받은 것은 정여사의 일이었다.
애초에 아버지의 내연녀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며 앞잡이 노릇을 한 장본인이 그녀였다. 그래놓고서는 그 아이를 거두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희영은 놀랍고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10년이나 지난 일이니 죽은 사람은 잊혀지는 게 사람 사는 법이라 할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쯤엔 이미 희영이 성인이 되고 난 후였으므로 한참 어린 얼굴도 모르는 남동생이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았었다. 정여사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니 서양인들처럼 입양을 통해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을 실천했거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잊었었다.
그런데 그래놓고는 또 입에 올리기도 껄끄러운 그런 문제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니. 정여사, 희영의 ‘서울이모’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어렸을 적 진원마저 태어나기 전에 만났던 젊은 서울이모는 사랑만을 좇아 낯선 타지까지 와서 희영모를 믿고 따르며 그 딸인 자신에게도 나이로만 치면 큰언니 같은 막내이모라도 된 듯 굴었었다. 나도 어서 빨리 우리 희영이 같은 똘똘한 딸 낳았음 좋겠다. 정여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상장을 타오고 시험에서는 늘 만점만 받는 희영을 볼 때마다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도 어머님 때문에 일단 아들을 낳아야겠죠? 그래도 그 담엔 꼭 딸 낳고 싶어. 그녀가 간절히 말할 때 그래도 자기네 김선생은 인격이 훌륭하잖아. 자기가 아들 못 낳아도 누구처럼 대놓고 티 내진 않을걸? …모를 일이긴 하지만. 희영모는 쓸쓸히 말했다. 그 대화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희영은 그 어린 나이에도 토씨 하나도 잊어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갖고 싶다던 딸을 낳았으니 얼마나 예쁘고 소중했을까.
희영은 그 마음은 이해했다.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딱히 원한 적도 없었던, 오히려 몹쓸 병 때문에 차라리 난임인 것이 잘됐다 싶었을 때 갑자기 찾아와준 아이. 안 그래도 힘든 몸이 더 힘들어질까 걱정한 희영의 동반자는 조심스레 유산을 권유했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도 못하게 자리잡은 아이가 희영은 기적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몸이 상하더라도 심지어는 낳다가 잘못되는 한이 있어도 그 아이를 꼭 세상에 내놓겠다고 결심했었다.
희영의 남편은 아이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희영이 출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너그러이 이해했지만 입양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아내의 몸상태를 알고 나서는 그마저도 입을 다물었던 사려 깊은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니 설령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아이만은 끝까지 책임지고 잘 키워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희영은 아이를 고이 품어 낳았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리워할 수 있지? 어떻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만지고 있는데도 만지고 싶은 그런 존재가 있을까. 부모자식 간이 천륜이라는 말을 희영은 그때서야 무슨 뜻인지 ‘진실로’ 알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다는 말을 희영은 갓 낳은 아이의 붉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며 비로소 이해했다.
그리고 희영은 그 마음으로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겠다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아이를 지키겠다고. 그래서 희영은 남편이 그토록 다방면으로 권유해도 도리질하던 운동을 악착같이 하기 시작했고, 식단이며 무엇이며 임신했을 때보다 더 신경을 썼다. 자식에게 부모의 빈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큰 사랑이고 의무임을 희영은 과거의 자신의 삶으로부터 체험했으므로.
아들아이는 자라면서 엄마보다도 외조부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생부의 흔적이 징그러웠는데, 기적과도 같이 여기는 하나뿐인 자식에게마저 그것이 드러나자 희영은 기가 막혔다. 물론 그 때문에 아이를 미워할 수는 없었고, 오히려 친부와의 면담을 거절하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로 작용했다.
희영의 고모는 아이의 사진을 보고 느이 아버지 어렸을 때랑 똑같다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희영은 허탈하게 웃었다. 어떤 자식이 나올지는 하늘도 모른다는 말을 희영은 아들로써 또 알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증거가 있는데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이가 외탁한 것은 얼굴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희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희영은 혹시라도 아버지와 이야기가 잘 풀리고 그 병든 노인이 현재로선 그의 유일한 손주를 보고 싶어하면 아들의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여주고, 그래서 분위기가 더 좋아져서 다음에 병실을 또 찾게 되면 아이를 데려와 인사시키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 옛날 과거를 꺼내며 어쨌거나 당신이 배신한 것이 틀림없는 죽은 처를 원망하는 말과 자신의 신세한탄만 늘어놓는 그를 보면서, 아들로써 알게 된 천륜에 기대어 헛된 꿈을 꾸었다고 희영은 스스로를 탓해야만 했다.
부친과 관련된 일은 무엇 하나 희영이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되는 바가 없었다. 하기야 1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한 어린 시절의 큰고모보다도 더 애정표현이 없었던 아비였다.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는 고루한 옛날사람이니 미워한 여자의 자식, 그것도 아들도 아닌 딸자식이라 그랬나 보다 체념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좋아한 여자가 낳은 아들자식마저 내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비란 자에게 자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희영은 생각했었다.
아마도 그래서 자신과 똑같이 버림받았음에도 그 이름뿐인 아비에게 선뜻 두 개의 장기 중 하나를 내놓겠다고 했다는 얼굴도 모르는 이복동생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를 만나고 나서 희영은, 아들에게 외삼촌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왠지 기뻤다.
앞으로 아이가 자라며 외가를 궁금해해도 인사시켜줄 만한 가까운 혈육이 없다는 것이 희영은 벌써부터 가슴이 아팠었다. 아이의 외조부는 그 딸과 사이가 파탄난 데다 곧 돌아가실 것만 같고, 아비의 형제자매들 중 그나마 면식이 있는 큰고모는 너무 고령인 데다 사는 곳도 가깝다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쪽이나마 피가 섞인 이복아우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희영의 일터와 가깝고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요한네 칵테일바와 살림집이 있었다.
더구나 요한은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희영도 한때는 화가를 꿈꾸었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재능이 없었고, 무엇보다 부모 모두 그림 그리는 것을 반기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어린 희영은 지레 스케치북은 덮어두고 교과서로 문제집으로 손을 옮겨갔던 것이다. 대신 역시나 엄마가 하기 원한 피아노는 유학 가서도 계속해서, 희영은 취미 수준에서는 꽤 잘 쳤다.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결혼 전까지는 속주곡이나 광광 대는 곡들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해지긴 했지만.
그림 이야기를 듣자마자 희영은 요한을 자리로 불렀다.
너 그림 그린다며?
…그냥 시간 때우기예요.
뭘, 제법 잘 그린다던데 좀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정도… 보여드릴 정도 아니에요.
요한은 펄쩍 뛰었다. 절친의 결혼선물로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먼저 말했으면서.
다음엔 화실에서 봐야 하나?
희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나도 잘 볼 줄 몰라. 그래도 보고 싶다. 나도 어렸을 땐, 아주아주 어렸을 땐 그림 그리는 걸 제법 좋아했었는데… 좋아하기만 했어. 재능은 없었거든. 이젠 뭐 보는 것만 좋더라고. 근데 네가 그림을 그린다니 신기하잖아. 어쩌면 너랑 나랑은 생각보다 더 공통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말에 동의하고 싶었지만 요한은 답하지는 않았다. 처음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는 한 방에서 잤고 10년을 한솥밥 먹어온 동갑내기 진원보다도, 30년 만에 만난 세대차이 나는 이복누이가 생각보다 더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성별도, 생긴 것도, 유전병의 발현 여부도, 학벌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른데도 말이다. 하기야 바람나고 자식을 버린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 하나가 그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큰 공통점이긴 했다.
요한으로서는 큰고모 외에는 처음으로 느끼는 혈육의 정이었다. 아니 아직 정이라고 말할 단계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신기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희영은 그러한 요한의 마음에 쐐기를 박기라도 하듯 그와 태수를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
엄마 동생이야. 삼촌이라고 해봐. 희영의 말에 당황해하는 요한에게 아이는 그 조그만 입술로 삼초온~ 하며 와락 안겼다. 오빠아~ 안겨오던 어린 하랑이 생각나서, 생각도 못했던 조카아이가 낯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받아주어서, 요한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어버렸다. 태수도 함께 울고, 희영도 눈시울을 적셨다. 선한 눈매의 그녀의 남편만이 그저 흐뭇하게 아들과 그 외삼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손수 음식장만을 하여 정성껏 차려놓은 식탁으로 손님들을 안내했고,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살갑게 굴었다. 무엇보다 그 아빠처럼 눈웃음이 그치지 않고 귀여운 재롱을 피우는 아이 덕분에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요한은 정여사와의 사이가 어긋난 이후 처음으로, ‘가족들’과 밥을 먹었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