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난 자리에는 유족들 간의 갈등이 들었다.
장례식장 선정을 두고서도 약간의 잡음이 있었고, 그 뒤에는 누구를 맏상제로 세울 것인지의 문제가 따랐다. 고인이 사망한 서울의 상급병원에 그대로 빈소를 차릴 것인지, 아니면 고인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것인지는 망자의 처가 남편이 위중해졌을 때 미리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렸던 덕에 후자로 금방 결정났다. 어차피 망인이 살아온 곳은 서울이 아니었고 장지 또한 선산으로 예정돼있는 데다, 장례식장 비용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처사였으므로 별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주 문제는 고인의 처와 그 손위시누이가 강경히 맞섰다. 신생과부가 고인이 돌림자를 써서 이름 짓고 실질적인 맏이로 키운 자신의 큰아들을 내세운 반면, 자식들만 챙기느라 바쁜 올케를 대신해 고인의 병시중을 들며 보살펴온 그 시누이는 그가 어디까지나 망자의 차남임을 지적하며 장남인 요한을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 대상자인 고인의 아들들은 그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고인의 둘째아들은 그저 지금껏 살아온 대로 모친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뿐이었고, 첫째아들은 아예 장례를 주관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에게는 이름뿐인 아비였다. 아니 차라리 ‘정말로’ 이름으로만 남아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망인이 김원장에게는 양육비를 보내고 명절이나 제사에라도 아들을 부르려 했던 것이 더 끔찍했다.
그리하여 부친의 병을 물려받은 큰아들의 훗날을 핑계로 계모가 결사적으로 이식을 못하게 한 막내아들 대신 수술대에 오르려 한 것으로 요한은 자식노릇을 마무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난 후 장례 땐 김원장을 생각해서 얼굴이나 한 번 비추고 말 요량이었다. 그러므로 고인이 이식도 받지 못하고 급사해버린 것은 요한에게는 슬프기보다는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런 판국에 대표상주까지 맡아 조문객을 받고 고인의 관까지 들어야 한다니, 요한에게는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다. 더구나 계모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래서 양부와 큰고모의 간곡한 설득에도 요한은 도리질을 했다. 그러나 이복누이 희영이 나랑 같이 하자, 네가 해야 나도 하지… 쓸쓸히 말하자 더는 거부하지 못했다. 출국을 앞두고 희영은 부친의 장례로써 모든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버리려는 듯 보였다. 아마도 목숨보다 소중한 하나뿐인 아들이 고인의 얼굴을 닮지만 않았어도 빈소의 알림판에 상주로서 이름 석 자를 올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졸지에 아버지라는 이의 맏상제까지 맡게 된 요한을 계모와 그 자식들 사이에 홀로 둘 수 없어 진원부자와 태수는 내내 함께 빈소를 지켰다. 희영은 무리를 하면 안되는 몸상태와 어린 아들 때문에라도 상주대기실에서 쉴 때가 많아서였다. 요한의 손님은 거의 없었으므로, 조문객을 맞느라 바쁜 계모와 그 자식들과는 달리 요한은 진원들과 여유롭게 긴 시간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한국어는 다소 서툴러도 소주는 좋아하는 희영의 남편도 곧잘 어울려서, 특히 또래인 태수와 급속히 친해졌다. 그는 태수에게 꼭 미국에 놀러오라고 더욱 꼬부라진 혀를 열심히 놀려가며 신신당부를 했고, 태수도 오케이를 외치며 요한과 함께 꼭 찾아가겠다 취중약속을 했다.
희영은 반갑게 김원장과 인사하고 어색하게 진원과 말을 텄다. 그야말로 강보에 싸여있을 때 몇 번 보지도 못한 이웃사촌 동생의 결혼식에는 다행히 참석할 수 있겠다고 말하며 희영은 웃었다. 진원은 명실공히 천애고아가 돼버린 절친에게 대범한 손위누이가 생겨서 감사했고, 덩달아 사람 좋은 자형에 귀여운 조카까지 나타나 요한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서로 사는 곳도 가까우니 누이네 가족과 오가며 지내면 요한에게는 더없이 좋을 텐데 그녀가 곧 다시 먼 이국땅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엔 형제 같은 친구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진원은 곧 안타까운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희영이 아직도 어린 시절 계모의 냉랭한 눈빛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는 이복동생을 대신해 그의 상속분까지 챙겨주고 나섰던 것이다.
오랜 세월 연을 끊고 살았지만 어쨌거나 망인의 자식들이자 자신의 전실자식들이 나타나자 그 계모는 유산상속을 걱정했다. 이미 고인 생전에 재산을 야무지게 관리하며 제법 불려놓은 것들은 이미 자신과 두 아들 몫으로 해놓긴 했지만, 끝내 망자가 명의를 포기하지 않은 재산도 꽤 남아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죽은 남편의 장녀와 장남에게도 상속권이 있지 않은가. 이미 모계의 재산을 상속받았고 남편도 부유한 희영은 경멸하듯 그딴 거 필요 없다고 계모의 말을 잘랐다. 싸가지없었으나 유산 욕심도 없다니, 스무 살 차이도 안 나는 의붓딸과의 살벌한 기싸움을 각오했던 계모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도 자신의 눈을 피하는 소심한 의붓아들이야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희영은 자신의 몫까지 요한에게 내어줄 것을 의붓어미에게 요구하고 나섰다. 거부하면 진원에게 위임하여 끝까지 소송하겠다며 강하게 나갔다. 왜 제게… 요한이 고마우면서도 이해되지 않아 다시금 묻자 희영 역시 다시 또 쓸쓸히 웃었다. 내가 원해서 아버지란 사람의 유전병을 이어받은 게 아니듯 너 역시 네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지. 네 엄마나 내 엄마나 모두 그 사람의 욕심으로 비극을 맞은 건 똑같지. 더구나 너나 나나 아버지란 사람한테 버림받은 것도 똑같고. 글쎄, 나도 정확히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우리가 DNA의 절반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알게 모르게 내가 혈육을 그리워했더라도, 네가 그토록 잘생기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는 해.
희영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요한은 얼굴을 붉혔다. 남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거든, 네가. 그리고… 그림 말이야, 희영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얼마일지 모르지만 상속받아서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잖아? 요한은 딱히 바란 적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진원과 태수가 희영의 말에 맞장구를 쳤음에도 그는 전 지금 이대로 만족해요. 칵테일 만드는 것도 좋구요. 수줍게 대답했다. 그래… 희영은 약간의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더 말하지는 않았다.
그도 모자라 희영은 이복아우의 또다른 두려운 어머니와의 사이에 매파노릇까지 하고 나섰다. 물론 진원부자, 특히 어렸을 때는 친삼촌인 양 가까이 지냈던 김원장과의 양동작전이었다. 아주 독해빠졌거나 심사가 뒤틀린 사람이 아니고서야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요한의 처지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정여사보다 훨씬 더 요한을 꺼릴 명분이 있는 희영 자신이 이미 그에게 원망은커녕 업어키운 막냇동생인 양 챙겨주고 있다는 점이 그녀의 ‘서울이모’의 고집을 꺾게 만들었다.
희영은 문상을 온 정여사를 한눈에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요한 때문에라도 기어코 내려오겠다고 하는 딸을 학기중임을 내세워 못 오게 한 정여사는 곧 후회했다. 희영이 이끌고 가서 앉은 따로 차려진 상에서 마주앉아 신상을 얘기하다가 하랑이 희영의 수강생 중 하나였음을, 그것도 담당교수가 기억할 정도로 우수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여사의 폰메신저 프로필은 늘 딸내미의 잘 나온 사진이었으므로 희영의 추측은 바로 확인되었다.
네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자랑했겠니. 아마 우리 진원인 박사 안 만들고 뭐했냐고 나한테 뭐라고 했을 거야. 희영이 너, 아니 우리 장교수님 너무 장하고 대단하십니다. 기분 좋은 우연에 정여사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던 희영에 대한 미안함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대신 수십 년 전 젊은 새댁의 순진함이 되살아났다. 그 기색을 놓치지 않고 희영은 요한을 말했던 것이다.
그애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따지고 보면 그애 엄마도… 그 어린 나이에 뭘 얼마나 알았을 거며, 그리고 또… 그렇게 돌아가셨다는데.
그 가련한 여인의 소식을 남편으로부터 전해듣고 정여사는 눈물 흘리기는커녕 너무도 가슴 아파하는 부녀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그래놓고는 남몰래 요한모를 위해 기도했다. 또한 그토록 경멸했었던 요한부의 부음에도 역시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그 부모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각각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는 요한의 소식을 듣고서는, 정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어려서부터 보채거나 떼쓰는 일이 없던 아이였다. 그럴 만한 일에도 고개를 떨구고 입술만 깨물던 아이였다. 친아들인 진원조차 숨기지 못했던 정여사에 대한 분노와 실망의 눈빛 대신 슬픔과 두려움의 눈빛밖에는 지을 줄 모르던 아이였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런 더러운 오해를 받았으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제 어미를 닮아 천성이 그랬겠지만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라서 더 그랬었으리라. 하랑의 탄생으로 조금씩 아이다운 웃음을 찾아가던 그애의 얼굴을 다시 어둡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자신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정여사는 요한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미안한 이상으로 요한이 껄끄러웠다.
그러나 또한 그애가 최근에 저지른 죄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 영상 속 울던 얼굴을 보고서는 마음이 내려앉았었다. 조그마한 그애가 어린애답지 않은 처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던 그날처럼. 차라리 울고 떼를 썼으면. 아니면 안아달라거나 품에 안겨들었으면.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었을 텐데. 그러나 그 어린것은 그토록 슬픈 눈만 할 뿐, 결코 어떤 요구도 않았었다. 그래서 더 그애가 가여웠고, 그래서 더 그애를 저어했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아서였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무조건 어른 탓이에요. 더구나 당신은 이제 그애 엄마예요. 선비 같은 남편은 아내를 타이르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고, 부처 같은 본곁어머니도 마찬가지로 딸을 가르쳤다. 그들이 옳다는 것은 정여사도 알았다. 그러나 좀처럼 몸은 머리를 따르지 않았고,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애초에 푸근한 성품도 아니었고, 남편과 달리 아이들이 좋아 죽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저 가엾다는 이유로 어여쁘지만 음울한 ‘남의 아이’에까지 나눠줄 애정과 관용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요한이 아이답지 않았던 것처럼, 정여사는 어른스럽지 못했다.
그애가 사춘기 시절 마음에 상처를 입고 가출했을 때 역시 마음의 병으로 앓아누운 진원을 붙들고 그애가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보고 눈가를 한번 훔친 것 외에는 그애를 위해 정여사는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그애가 스스로를 다치게 했다는 소식에도 나지 않던 눈물이, 어째서 그애가 아비의 죽음에 난동을 부렸다는 말에 갑작스레 솟아나왔을까. 정여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늙은 탓이겠거니 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애를, 늘씬한 키에 긴 팔다리를 자랑하는 꽃미남 청년의 모습이었으나 여전히 우수에 찬 눈빛을 한 요한을 보자 정여사는 또다시 가슴 한켠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희영과 함께 장례식장 근처 카페에 나와있었고 요한은 진원과 함께 주뼛거리며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저 보기 싫으셨을 텐데…
요한이 공손히 인사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정여사는 그의 얼굴에서 젊은 날의 그 생모가 비슷한 말을 했던 모습을 생생히 목격하고 잠시 현기증이 났다.
한참 후 요한이 미소하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절 아들이라고 해주셨잖아요… 잊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정여사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너무 속이 좁았어. 괜한 욕심이 많았다.
어머니… 어머니…
친부의 주검 대신 살아있는 양부를 붙들고 아버지를 되뇌었던 것처럼, 요한은 이번엔 친모의 유골함 대신 양모를 붙들고 어머니를 되뇌며 흐느꼈다. 비록 생모는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미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리워했던 또다른 어머니를 요한은 마침내 되찾았다. 모자상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