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등변삼각형> 3부 중에서
(3부는 분량이 1~2부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으므로 상/하 두 편으로 게재합니다. 3부부터 연재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편당 5천 자를 채우는 게 더는 힘들지 않았던 ㅎㅎ 그러나 세이브 원고가 떨어지며 막판에는 꽤 고생을 했지용!)
없는 집에 시집와서 성질 고약한 홀시어머니를 삼십 년 가까이 모셔야 했고, 성실한 축이지만 돈 버는 재주는 전혀 없는 남편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독한 약냄새를 참아가며 여인네들의 머리를 말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식당에 나가 김밥을 말거나 설거지를 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토록 그악스럽게 버틴 끝에 마침내 서울 변두리에 국민주택 아파트를 마련하고 딸 앞으로는 혼수비용을, 아들 앞으로는 주택청약을 부어온 모친의 악착스러운 삶을 시은은 모르지 않았다.
돈을 모을 줄만 알지 쓸 줄은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딸의 결혼에는 신이 나서 은행에 묻어두기만 했을 돈을 거리낌없이 내놓으며 기죽어서는 안 된다고 할 때, 그러면서 자신이 모아놓은 돈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을 때, 시은은 자신의 결혼이 이른바 ‘상승혼’인 까닭에 어머니의 마음에 더욱 흡족한 혼사임을 알았다.
그저 돈을 벌어 부모님께, 정확히는 그들이 딸 넷을 내리 낳은 후에야 얻은 외아들에게 가져다주느라 연애나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가 늦은 결혼을 한 시은모는 서민가정의 주부들이 그러하듯 날이 갈수록 억척스러워졌다. 그가 그렇게 버텨온 것은 자식들, 특히 딸자식이 자신과 달리 풍족한 결혼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술과 도박, 계집질만 하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의 경제력이었다. 살을 맞부대며 자식을 낳고 살다보면 정이야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딸내미를 중매시장에 내놓으려던 참에 진원과의 연애를 알게 되고, 더구나 그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한여사는 무척 기뻤다. 첫딸을 낳고 울었던 것은 자신도 친정어머니처럼 혹시 딸만 내리 낳게 될까 걱정되고 시어머니의 구박이 무서워서이긴 했으나, 무엇보다 딸이 자신처럼 살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되어서였다. 그는 그런 마음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바로 위의 두 살 터울 나는 언니에게만 고백했었다.
시은이 기억할 수 있는 나이 이후로는 딸의 어깨 한 번 두드린 적 없는 한여사로서는 자신만큼이나 애정을 표현하지 않아 온 딸의 품이 영 어색했다. 둘째를 낳자마자 산후조리를 핑계삼아 시어머니에게 뺏기다시피한 딸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래도 딸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한여사도 자식들에게 따뜻하지 못했다. 칭찬보다는 비난을 앞세웠고 안아주는 대신 매를 들었다. 소심한 편에 속하는 남편과 아들, 그들보다는 오히려 강단이 있지만 자신의 기준에 흡족하지는 않는 딸에게 그이는 일종의 독재자였다. 다만 한결같이 정성 가득한 상차림과 깨끗한 빨래와 먼지 한 톨 없는 청결함을, 부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제공해 온.
...더 이상의 혼란 없이 무사히 결혼식을 치르고, 달콤한 허니문을 다녀오고,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즐기고픈 자기중심적 욕망만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은 자신만의, 진원과 둘만의 일도 아니었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고도의 사회적 행위’임은 차치하고, 당장 시은에게는 방금 전 보았던 어머니의 즐거워하던 모습이 무엇보다 큰 구속력을 행사했다. 시은은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한여사 자신의 결혼식 이후로 가장 많이 꾸민 모습일 그녀가 기쁜 마음으로 화촉에 점화하고, 뿌듯한 얼굴로 신랑신부를 바라보고, 신부인 자신의 옆에 서서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길 바랐다. 그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돌아와 술병이 난 그는 이제는 자신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가 된 생모가 떠나는 꿈을 되풀이해 꾸었다.
꿈에서 어릴 때로 돌아간 요한은 울며 친모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과 닮았지만 좀 더 선이 곱고 처연한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호통치고 야단쳐서 무섭기만 한 아버지와, 그저 의붓자식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두렵게 하던 계모가 보였다.
요한은 추웠다. 오한을 느꼈다. 열에 들뜬 육체는 물론이고 혼란스러운 정신마저도. 꿈에서 그는 어린아이인 채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윽고 무서운 아버지와 계모는 사라지고 대신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들은 어린 요한에게 흰 눈을 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조그맣고 여윈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물범벅인 어린 요한에게 역시 어린 진원이 실제로 그랬듯 손을 내밀어주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요한은 그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요한은 진원에게 안겼다. 어린 진원이 어린 요한을 꼭 안아주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요한에게 행복이란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었다. 사막을 가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는 이미 숨쉬기 힘든 사막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머나먼 미래의 인류가 사는 사막행성이 나오는 SF영화를 진원과 함께 관람했을 때 그는 등장인물들이 타고 다니던 거대한 사막벌레들에 매료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넓디넓은 모래바다를 거침없이 헤치고 나가는 그들을 보았을 때 그는 그 벌레들이 아름다웠다. 부러웠다. 정확히는 그 벌레들 위를 타고 다니는 인물들이 부러웠다. 자신에게도 그 벌레들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차라리 꿈이 없이 산다면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사장은 지난 세월로써 알았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사별한 것만 빼면 별다른 고통 없이 나름 평온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 비록 아내는 병마와 싸우다 서른 해도 채우지 못하고 갔지만 사랑하는 남편의 품안에서 행복했다고 말하며 눈을 감았었다.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이별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했던 아내의 말을 사장은 위안으로 삼았다. 비록 백년해로하며 자식을 낳아 기르는 기쁨은 누리지 못했으나 아내는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생생했고 아내의 사진에 아침저녁으로 인사하는 것으로 사장은 슬픔을 덜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통장잔고가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제 더는 빚에 시달리지 않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재정 상태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요한이었으므로 그가 결혼하거나 독립할 때를 위해 사장은 따로 통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서른이 넘어 뒤늦게 찾아온 요한의 열병은 완전히 잘못되었지 않은가. 사장은 휘청이는 요한을 단단히 붙잡아주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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