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등변삼각형> 3부 중에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 적은 별로 없지만 스스로에게 실망한 적도 그만큼은 없었던 시은이었다. 특출나게 뛰어난 적도, 심각하게 모자란 적도 그녀의 인생에는 아직까지는 없었다. 시은은 모든 것에서 평균 또는 그를 약간 상회했다. 그 수준을 넘도록 야망이 넘치는 성격도 아니었으므로 이제까지의 삶은 다소 지루할지언정 평온했다. 시은은 파도가 너울대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호수도 거센 비바람에는 그저 고요할 수 없었다.
시은은 자신을 격동시킬 만한 사건사고를 겪지 않은 행운을 누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왜 주기도문에는 시험을 이겨내게 해달라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지 무종교인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정여사의 모친은 노처녀 소리를 들은 지 한참 지난 나이에 재취로 들어와 드센 의붓딸의 뒤틀린 마음을 녹인 따스한 햇살 같은 심성의 소유자였다. 서울 좋은 위치에 개원해주겠다는 장인자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땅으로 내려가 월급쟁이 의사가 되겠다는 사윗감의 고집에 결혼을 파투내려고 했던 남편과 달리 전적으로 딸의 편이 되어준, 정여사에게는 생부처와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불교신자였던 그녀는 시집간 딸이 개신교도가 되자 낯선 땅에서 믿고 의지할 곳이 생겼으니 감사할 일이라며 두 손을 꼭 잡고 축하해주었다. 정여사는 그저 오냐오냐하는 아버지보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다정하나 필요할 땐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새어머니를 더 신뢰했다. 그리고 정여사의 계모와 남편은 모자지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성격이 비슷한 데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나오는데야 정여사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진원부는 아내의 투항에 그녀를 포옹하며 자신도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했다. 예수님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효자에 애처가로 소문났으면서도 기어코 그들을 따라 교회는 나가지 않던 진원부는 종종 경전의 말들을 인용하곤 했다. 정여사는 그런 남편이 어이없으면서도 귀엽다 생각했다.
요한모를 전도하고 난 후 교회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된 정여사는 아들들이 친구가 되는 것을 너그러이 허락했었다. 6개월 넘게 차이가 나는 데다, 진원은 숙성하고 요한은 그렇지 않아 둘은 마치 연년생 남매처럼 보였다. 아기 진원은 요한에게 간식거리와 장난감 등을 망설임 없이 넘겨주었고, 아기 요한도 진원만 보면 방싯방싯 웃었다. 두 아이가 엄마아빠 다음에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를 굴려 말한 것은 서로의 이름이었다. 정여사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요한이 탐욕스러운 제 아비를 조금이라도 닮은 외모였다면 아이들을 붙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자라 같은 유치원을 다니게 된 진원과 요한은 쌍둥이처럼 붙어다녔다. 여전히 체격 차이가 나고 성격도 달랐음에도, 요한은 진원만 졸졸 따라다녔고 진원은 요한을 친동생처럼 챙겼다. 그러나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하기 쉬운 아이들은 대부분은 별다른 악의 없이, 때로는 악의까지 그대로 복사하여 어린 요한을 괴롭히고 따돌렸다. 늘 웃는 얼굴에 말썽 한 번 피우는 일 없이 그때부터 이미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었던 꼬마 진원이 성을 내며 사납게 날뛰게 만드는 유일한 일이 그것이었다.
요한은 입이 짧았다. 조그맣고 마른 것이 꼭 어미를 닮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진원과 함께 있으면 그를 따라 요한의 자그마한 입도 오물오물 꽤 열심히 움직이곤 했다. 요한이 먹는 모습을 보고 진원도 또다시 입을 벌리고, 또 그를 따라 요한도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집어먹고.
그렇게 두 아이는 함께 밥을 먹으면 먹성이 좋아졌고, 그렇게 배가 부르면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역시 무매독자로 자란 진원부는 두 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유독 보기 좋아했다. 그러면 정여사는 더욱 남편에게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어린 요한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말이 적고 얌전한 데다가, 깔끔해서 알아서 잘 씻고 주변도 잘 정리할 줄 알았다. 잘 때는 옷을 반듯이 개어놓고 일어나서는 이부자리를 말끔히 정돈하며 식사자리에서 음식이라도 흘릴라치면 바로 치우는 것이, 나름 깔끔하다고 생각했던 정여사의 남편을 비롯해 서울 친정의 아버지나 이복형제들에게서는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마저도 제 어미를 그대로 닮은 것 같아 정여사는 한편으로는 떨떠름하기도 했다.
진원은 그때부터도 닥치는 대로 책을 쌓아놓고 읽곤 했는데 다 읽고 난 책들을 책꽂이에 다시 꽂아놓는 것은 늘 요한이었다. 진원과 똑같은 책가방을 매면 어깨끈이 흘러내리는 그 조그만 아이가 가느다란 양팔에 책들을 잔뜩 들고 뒤뚱거리는 것이 정여사는 안쓰러웠다.
그냥 둬, 아줌마가 치워줄 거야. 어느 날 보다못한 정여사가 요한에게서 무거운 학습만화들을 내려놓았을 때 아이는 말없이 그저 정여사를 바라보았다. 어린것의 눈빛이 그토록 처연할 수가 없어서 정여사는 가슴 한쪽이 내려앉았다. 그냥 놔두세요 사모님, 그렇게라도 은혜 갚아야죠. 몇 년을 일해온 가사도우미였지만 그녀는 그날 바로 해고되었다. 이젠 우리집 아이예요, 내 아들이라고요. 파출부의 대거리에 정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
진원과 함께 있지 않으면서도 요한이 웃는 때는 어린 하랑을 볼 때뿐이었다.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순둥하고 예쁜 짓만 하는 하랑은 친오빠의 그 나이 때의 모습과 빼닮아 있었고, 요한은 마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하랑을 통해 다시 만나는 듯 보였다. 김원장이 퇴근해 돌아올 때면 요한은 하랑을 업고 대문 앞까지 내려갔다. 두 아이는 그곳에서 손을 꼭 잡은 채 다정한 가장을 기다리곤 했다.
아빠에게 달려오는 귀염둥이 딸내미를 안아들고 김원장은 학교에서 잘 지냈느냐고 요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랑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과 한이 오빠와 보낸 시간을 종알종알 들려주는 것을 들으며 저녁을 먹을 때가 김원장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모의 사진을 봐도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 정여사는 한때나마 의붓딸의 골탕에 시달렸던 계모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했다. 통곡하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숨을 거둔 어머니가 살아서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말씀으로 자신을 혼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 아니면 불자로서의 평등한 자비심을 접어두고 부모로서의 배타적인 이기심을 이해해주길 바랐던 것인지는 정여사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이미 파출부가 말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린 딸을 보호하려는 마음뿐이었다. 요한이 상처받기를 원한 적은 없었다. 그것만은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 두 분이 한 지아비 곁에 나란히 잠든 무덤 앞에서도 맹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딸의 몸을 지키는 것과 양아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을 모두 이뤄낼 정도로 정여사는 연기력이 뛰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시간 역시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정여사가 찬찬히 마음을 다스릴 여유를 조금도 주지 않고 속절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오빠만큼이나 숙성한 편인 하랑은 하루가 다르게 다리가 길쭉해졌고, 마치 작기만 했던 어린시절을 만회하려는 듯 요한도 어느새 진원에 버금가게 머리가 솟기 시작했던 것이다. 변함없이 마르고 늘씬한 체형이었으나 이미 소년은 남성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딸을 둔 어머니의 비뚤어진 모정은 커져갔다.
요한의 방황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고 그예 두 번째의 가출사건을 일으켰다. 진원은 이번엔 아프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버지와 함께 문제아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소년은 친구를 보자마자 주먹을 날렸다. 아주 그냥 흠씬 두들겨팼다. 그따위로 살려면 내 얼굴 볼 생각은 하지도 마 자식아! 씩씩대는 소년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가 때린 소년의 눈망울도 흐려졌다. 더 이상 말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두 아이를 끌어안으며 김원장은 그 순간 아들들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정여사에게 토로했다.
새어머니의 눈빛과 양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친어머니의 눈물. 요한을 못 견디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 앞에서 요한은 마치 여름에도 녹지 않는 얼음벽에 갇힌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친모의 눈물은 조금이나마 애착을 동반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어머니들에 대해서는 원망과 두려움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나마 미움은 줄어드는 듯도 했지만 무서움만큼은 좀처럼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들 앞에서 요한은 아직도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요한은 그러나 정여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시은에 대한 그리움에 굴복했다. 어쩌면 그저 비뚤어진 욕망이고 집착일지 몰랐지만, 그 대상이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소중한 절친인지 아니면 그의 정혼녀인지도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여자를 보고 싶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진원조차도 이토록 그린 적이 없었다. 부럽도록 잘난 친구는 다정하며 믿고 기댈 수 있는 이였다. 유일한 안식처였다. 친구의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순간에 무표정한 그녀는 따뜻하기는커녕 차가운 어머니들을 닮은 것도 같은데 왜 그녀를 생각하면 설레고 보고픈 것인지 요한은 스스로도 알 수 없어 짜증이 날 형편이었다.
그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를 얼음에 가두어 깊이를 잴 수 없는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힌다면, 절친의 약혼녀는 그를 얼음에서 꺼내어 높이를 알 수 없는 대기로 띄워올리는 듯했다. 다만 그것이 열기구에 올라탄 듯 즐거운 흥분을 주는 유희였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나 요한은 마치 내리막길로 치닫는 기분이었다. 산사태가 일어 무너지는 눈덩이들을 그저 바라보다 휩쓸리고 마는 느낌이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피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요한의 마음은 요한의 마음을 떠나 있었다.
행복했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그나마 친부모와 함께 살던 원래의 집에서는 기억에조차 없는 행복이. 넓은 마당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면 보송보송 말라가던 빨래들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나풀대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사이를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던 어린 하랑의 천사 같은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진원부자와 함께 캐치볼을 하고 배드민턴을 치며 즐거워했던 광경이 머리를 지나 가슴에 사무쳤다.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riangl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