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등변삼각형> 5부 중에서
(벌써 마지막이라니!! 시작할 때 이렇게 장편이 될지 모르고 무작정 덤벼들었는데, 단편 정도의 소재가 변형과 확대를 거쳐 장편이 되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하고 뿌듯합니다:) 이대로 비하인드를 마무리할지 어떨지는 아직 고민중이랍니다)
띠동갑 하고도 한 살 위의 배다른 누이는 아비를 닮았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우뚝 솟은 잘생긴 콧대와 귀밑 각진 턱이 그러했다. 누이의 어미를 본 적 없는 요한으로서는 흐릿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희영의 얼굴에서 아비의 흔적만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구 아가. 요한아, 야야…
아비라는 이의 유일한 손위형제인 팔순이 가까운 큰고모가 십수 년만에 만난 친정 조카를 울먹이며 끌어안는 바람에 요한은 눈을 떴다.
억지로 끌려간 친조부모의 제사상 앞에서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전부였으나 만날 때마다 아가, 갠잔으냐? 눈물 지으며 얼굴을 쓰다듬던 고모의 손길은, 갈라진 나무껍질처럼 거칠기만 한 손바닥에도 불구하고 늘 따스했다. 역시 드물게 보았던 정여사의 돌아간 계모가 외손주들을 향한 눈빛과 고모가 자신에게 주는 눈길이 닮았다 느껴져서, 어린 요한은 그나마 그이에게 의지하여 바늘방석 같은 그 시간들을 가까스로 버텨내곤 했었다.
아이구 고 어린것이 이리 훌쩍 커서… 인저 헌헌장부가 되었구나. 아이구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할머니가 되어버린 요한의 큰고모는 굵고 가는 주름들이 빼곡하고 검버섯마저 듬성한 두 손을 모으고 굽어가는 허리를 연신 굽혔다.
고모님…
마지막으로 보았을 땐 마주보았던 혈족을 이제는 한참 내려다보게 된 요한이 그네의 앙상한 양팔을 붙잡았다. 그 옛날처럼 노인이 거친 오른손을 들어올려 청년의 매끈한 볼을 어루만지며 콧물을 들이마셨다. 늘어진 눈꺼풀에 가려 온전히 보이지 않는 눈동자의 색이 바래어 옅은 푸른빛을 띠었다.
그리고 그렇게 몸속 피의 절반과 마침내 절연하고 나면, 남은 피의 절반의 주인을 만나도 세상 떳떳할 기대도 요한은 했다. 어쩐지 자신의 결정을 엄마는 칭찬해줄 것만 같았다. 우리 착한 아들. 정여사가 두 팔을 벌리며 우리 잘난 아들! 활짝 웃으며 진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예쁜 딸! 하랑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차피 친부와의 유대감을 기억 못하는 요한으로선 김원장이 어깨를 두드려주고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만으로도 부자지정을 육신의 온기를 통해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었지만, 사춘기 이전 하랑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도 이미 정여사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요한의 손조차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으므로 요한은 모정에 허덕였다. 사포질 전의 목재처럼 거친 손바닥이라도 볼을 어루만지는 고모의 손길은 정다웠으나 어디까지나 고모, 삼촌이었다. 낳거나 키워준 엄마, 일촌은 아니었다.
십대 초반에 혼외자를 낳은 아버지를 알고, 그 직후 비명횡사한 어머니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뜬 할아버지를 연달아 잃고, 이후에는 다만 할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오직 죽은 모친의 한을 풀어주려 살아온 젊은 날들 속의 희영은 연애조차 쉽지 않았다. 하나의 목표만으로 산다는 것은 가끔은 숨이 막히는 짓이었다. 그리하여 희영은 그 엄마의 엄마만 계시지 않다면 그냥 되는대로 살 텐데, 아니면 그냥 죽어버려도 될 텐데, 매우 드물었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런 그녀가 가면을 내려놓고 솔직해지는 대상은 그때에도 현재의 남편뿐이었다.
아픈 마음을 갑작스러운 신경질로써 드러내는 연인을 조용히 보듬어주는, 풍요롭고 사랑마저 넘치는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덕분인지 좀처럼 보기 드문 좋은 남자였으나 희영은 자신이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자신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고약스러운 성질 때문에 결국에는 결혼을 망치고 말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그런 상태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상상 역시 끔찍했다. 그래서 이른바 결혼적령기의 희영은 남편의 청혼을 거절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다시 만난 남편에게 이미 자식이 있다는 것에 희영은 오히려 안도했다. 유언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기폭제이긴 했어도, 이미 새파란 젊음을 떠나보내고 난 뒤였던 희영은 이혼이나 혼자로 되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는 어른스러워졌으므로 그제야 웨딩마치를 울릴 수 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리워할 수 있지? 어떻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만지고 있는데도 만지고 싶은 그런 존재가 있을까. 부모자식 간이 천륜이라는 말을 희영은 그때서야 무슨 뜻인지 ‘진실로’ 알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다는 말을 희영은 갓 낳은 아이의 붉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며 비로소 이해했다.
그리고 희영은 그 마음으로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겠다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아이를 지키겠다고. 그래서 희영은 남편이 그토록 다방면으로 권유해도 도리질하던 운동을 악착같이 하기 시작했고, 식단이며 무엇이며 임신했을 때보다 더 신경을 썼다. 자식에게 부모의 빈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큰 사랑이고 의무임을 희영은 과거의 자신의 삶으로부터 체험했으므로.
엄마 동생이야. 삼촌이라고 해봐. 희영의 말에 당황해하는 요한에게 아이는 그 조그만 입술로 삼초온~ 하며 와락 안겼다. 오빠아~ 안겨오던 어린 하랑이 생각나서, 생각도 못했던 조카아이가 낯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받아주어서, 요한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어버렸다. 태수도 함께 울고, 희영도 눈시울을 적셨다. 선한 눈매의 그녀의 남편만이 그저 흐뭇하게 아들과 그 외삼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손수 음식장만을 하여 정성껏 차려놓은 식탁으로 손님들을 안내했고,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살갑게 굴었다. 무엇보다 그 아빠처럼 눈웃음이 그치지 않고 귀여운 재롱을 피우는 아이 덕분에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요한은 정여사와의 사이가 어긋난 이후 처음으로, ‘가족들’과 밥을 먹었다. 따뜻했다.
태수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첫사랑인 여자는 그 대상이 되길 거부했다. 시은은 그 대상은 ‘진원의 결혼상대’일 뿐이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판단은 요한 스스로가 예전에 시은에게 고백했던 것들에 근거하고 있었다. 똑똑한 여자였다. 그리고 바보 같은 여자였다. 시은의 판단이 맞더라도 결국 그 대상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은 자신인데. 진원의 팔짱을 끼고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할 거면서, 진원과 강아지 같은 아이들을 낳고 살아갈 거면서, 그렇게 죽을 때까지 진원이 사랑할 유일한 여자일 거면서… 그렇다면 앞으로도, 내가 진원일 사랑하는 한 너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거잖아.
물론 시은이 말한 뜻은 그게 아니란 것도 요한은 모르지 않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기에 그 목소리에는 조금의 떨림도 없었고 말투에는 약간의 의심도 없다는 것을 요한은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불행이었다. 결혼을 앞둔 여자가 한때의 흔들림을 잘 이겨내고 마침내 제자리에 돌아갔으므로.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므로. 그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의 질량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똑같아서, 기쁨과 슬픔이 상쇄되며 저울은 정확히 수평을 이루어서, 요한은 굳이 속마음을 감출 수고조차 할 필요 없이 덤덤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저 다행한 일이었다. 감사했다.
이젠 정말 더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말하면 안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순간 더는 비밀이 아니었다. 또다시 괜한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더구나 전처럼 마음이 괴롭거나 힘들지도 않았다. 그러니 잘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더 나아질 거야. 그래, 생각도 못했던 조카까지 생겼잖아.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걸어오잖아. 웃을 일이라곤 없었는데 어느새 웃게 됐잖아. 그러니 괜찮아. 견딜 수 있어. 요한은 죽음을 생각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게 됐음을 기억해냈다.
어려서부터 보채거나 떼쓰는 일이 없던 아이였다. 그럴 만한 일에도 고개를 떨구고 입술만 깨물던 아이였다. 친아들인 진원조차 숨기지 못했던 정여사에 대한 분노와 실망의 눈빛 대신 슬픔과 두려움의 눈빛밖에는 지을 줄 모르던 아이였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런 더러운 오해를 받았으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제 어미를 닮아 천성이 그랬겠지만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라서 더 그랬었으리라. 하랑의 탄생으로 조금씩 아이다운 웃음을 찾아가던 그애의 얼굴을 다시 어둡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자신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정여사는 요한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미안한 이상으로 요한이 껄끄러웠다.
그러나 또한 그애가 최근에 저지른 죄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 영상 속 울던 얼굴을 보고서는 마음이 내려앉았었다. 조그마한 그애가 어린애답지 않은 처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던 그날처럼. 차라리 울고 떼를 썼으면. 아니면 안아달라거나 품에 안겨들었으면.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었을 텐데. 그러나 그 어린것은 그토록 슬픈 눈만 할 뿐, 결코 어떤 요구도 않았었다. 그래서 더 그애가 가여웠고, 그래서 더 그애를 저어했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아서였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무조건 어른 탓이에요. 더구나 당신은 이제 그애 엄마예요. 선비 같은 남편은 아내를 타이르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고, 부처 같은 본곁어머니도 마찬가지로 딸을 가르쳤다. 그들이 옳다는 것은 정여사도 알았다. 그러나 좀처럼 몸은 머리를 따르지 않았고,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애초에 푸근한 성품도 아니었고, 남편과 달리 아이들이 좋아 죽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저 가엾다는 이유로 어여쁘지만 음울한 ‘남의 아이’에까지 나눠줄 애정과 관용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요한이 아이답지 않았던 것처럼, 정여사는 어른스럽지 못했다.
장례 직후 십 년 만에 옛 집의 옛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정여사가 칼에 손을 베어가며 갖은 야채와 소고기를 듬뿍 넣은 나머지 색색의 알갱이가 쌀알보다도 많은 죽을 가져다주고는 환자가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방을 떠나지 않았을 때, 요한은 비로소 그녀를 완전히 용서했다. 여전히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지 않았어도 상관없었다. 진원에게도 다 큰 아들자식이라 다르지 않게 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정여사는 주뼛거리며 이젠 자주 내려오라고, 오는 겨울에는 하랑까지 네 가족이 비행기를 타보자고까지 말했다. 그 말대로 하고 싶었다. 진원의 몫까지 김원장 부부를 챙겨주고 챙김 받고 싶어서였다.
어떤 희망을 품기엔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고 그렇다고 절망만 하기엔 되찾은 것들과 새로 얻은 것들이 있었다. 평범한 연애나 결혼은 여전히 남의 이야기 같기만 했다. 누이처럼 아픈 마음과 몸을 보듬어줄 수 있는 자형과 같은 이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리라. 요한은 그저 더는 주위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현재로서는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었다.
그날 그곳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창백한 안색의 요한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저 어떡하냐, 할 말이 없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건강 잘 챙겨야 해요… 그런 진부하고 관용적인 말들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래서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린 것이었는데, 그가 스스로를 다치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많이, 끝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그 어느 장례식장에서보다 나는 더 많이 울었다.
그토록 찾고 싶어한 어머니는 한 줌의 재로 돌아오고 그토록 미워한 아버지는 맏상제로서 마지막 가는 길을 모셔야 하는 요한의 기 막힌 처지가 더 마음 아파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게, 고작 2시간을 차로 달려가 엇비슷한 시간 동안 울기만 하다 다시 밤길을 달려 돌아오는 것 밖에는 없다는 현실도 나는 너무 아팠다.
지난날 그런 불미스러운 일만 없었어도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하다 못해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진원이 원했듯 우리 셋이 모두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으면 나는 그의 마른 손이라도 잠시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요한과 나는 서로 깍듯이 절은 할지언정 손가락 하나도 닿을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진원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설령 단 둘이 있었다고 해도 나나 요한이나 그렇게밖에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문상 온 연주는 오빠 어떡해,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요한을 부둥켜안고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했다. 그 모습이 일순 부러웠다는 말을, 나는 끝내 진원에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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