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이야기: 신파와 회한 사이

본편 39화~41화, 81화 비하인드

by 지구인




- 요한모: 윤OO, 이하 尹

- 요한부/장원장: 장OO, 이하 張

- 진원부/김원장: 김OO, 이하 金

(세 남녀의 비하인드입니다: 또다른 부등변삼각형)









尹은 점잖은 金을 잠시 사모했었다. 金은 그녀가 가난한 집의 배우지 못한 여자여서 홀어머니의 반대로 헤어져야만 했던 옛사랑을 연상시켜서 연민이 갔었다. 이를 알아챈 張은 金에 대한 콤플렉스가 발현해 더욱 尹을 가지려 한 것도 있었다.


질투와 욕정으로 시작해 어쩌면 사랑으로 진행되었지만, 끝내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서워하기만 하는 尹에게 실망해서 버려버린.


어쩌면 그녀가 일생의 사랑이 될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머리와 끈기로써 쟁취한 의사직. 당연히 돈을 보고 결혼했다. 연애나 사랑, 그 모든 것은 그에게 사치였다. 그저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다.


처음엔 그도 돈 많은 처가가 고맙고 얼굴도 반반한 편인 처도 마음에 들었었다. 그러나 병약한 그녀는 신경질적이었고, 몸까지 골골하니 살뜰한 내조를 기대하지도 못했다. 장인장모는 다 큰 딸이지만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여전했고, 자신을 머슴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훗날 알고 보니 까칠한 요조숙녀인 줄만 알았던 아내란 여자는 결혼 전 낙태경험도 있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난 남자의 아이라고 했다. 억지결혼을 한 그녀로서는 당연히 남편에게 냉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아내를 고맙게 여겼건만, 張은 뒤늦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남편의 추궁에 그러나 아내는 당당했다.


그래서, 당신은 깨끗하다고?


남자랑 여자랑 같아?!


난 적어도 사랑한 남자였고 한 명뿐이었어. 난 낳고 싶었고 기르고 싶었다고.


말의 내용과 달리 아내의 말투나 표정은 여전히 서늘했다.


어차피 우리 각방이니 당신 딴짓 마음대로 하고 다녀. 대신, 바깥에서 자식만 만들지 마.


張은 원래부터도, 고향선배이자 대학선배로서 金과 친하게 지낼 때부터 이미 유흥을 좋아했다. 제법 뼈대 있는 가문이었고 독립운동에도 관련했던 가풍에서 자라나고 독서와 고전음악 감상이 취미인 교양 있는 金과는 너무도 달랐다. 결혼하면서 그래도 애써 참는다고 참았는데 더는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그는 다시금 유흥업소에서 성욕을 풀었다. 나이 들면 줄어든다는데 웬걸, 나이 들수록 짱짱해지는 것 같아 오히려 미치겠다.


당신 돈은 없어도 돼. 어차피 당신 병원도 우리 아버지가 차려준 거잖아?


어린 외동딸을 조기유학시키겠다고 아내는 그렇게 남편의 자존심을 긁고 출국해버렸고, 張은 이젠 대놓고 외박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향수냄새 독한 술집 여자들에게 질려갈 즈음, 尹을 만났다. 그녀들과 달리 겨우 만으로 스물이 된 수줍은 尹의 처연한 미모에 그는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입술만 겨우 바른 얼굴임에도 성형과 화장에 찌든 여자들보다 찬란히 빛났다.


예상대로 그녀가 처녀임을 확인하자 張은 몹시 만족했다. 밖에서 자식을 만드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아내의 협박에, 그는 앞일은 모른다는 욕심으로 정관수술 대신 남성용 피임도구나 질외사정을 고집했다. 두어 번 실패한 것도 같았지만 그는 돈으로 무마했다. 그 역시 성욕의 상대에게서 자식을 낳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꽤 철저하게 대응했다.


張도 회한이 있었다. 사람인데 왜 없겠는가.


어쨌거나 자신의 외도가 첫 아내와의 사별의 원인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일점혈육인 첫 자식인 딸과도 절연하면서,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을 이겨내고 이루어낸 尹과의 결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원장님이라고만 부르며, 그저 어려워하기만 했다. 그런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환한 미소를, 고향에서의 아는 오빠였다는 옛 인연에게는 거리낌 없이 내비쳤다.


실상 그녀가 이른바 옛 남자에게 준 것은 그 미소뿐이었지만 張은 용서하지 않았다. 곧바로 불륜의 죄를 뒤집어씌워 내쳤다.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는 尹은 맨몸으로 쫓겨나며 어린 아들을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울며 매달렸지만 張은 역시 냉정하게 돌아섰다. 정작 저는 제가 부리는 간호사 중 한 명과 정을 통하고 있었던 주제에.


그러나 세 번째 아내도 張이 그랬듯 재력과, 나아가 신분상승을 위해 결국은 張을 이용했다. 張 역시 그동안 제대로 받지 못한 내조를 받고자 고른 처였으니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도 두 아들이 우선이었고 남편은 뒷전이었다. 병이 든 張은 일을 줄였고 당연히 수입도 줄었다. 아내는 묘하게 냉랭해지더니 별거 비슷하게 돼버렸다. 아들들은 또 비싼 유학을 보내고 그 어미는 자주 거기에 나가 있었다. 張은 결국 혼자가 되었다. 그는 뒤늦게 尹을 떠올리며 후회했다.


張의 금전적 도움을 받았던 형제자매들과 그 조카들도, 생간을 떼어달라는 것도 아니건만 우물쭈물 난색을 표했다. 되레 팔순을 앞둔 누이가 수술실에 눕고 싶어했다. 張은 평생 고생만 하다 늙은 몸으로 병든 아우까지 보살펴주는 누님에게, 설령 그녀가 창창한 나이였대도 그런 부탁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동생들 학비와 결혼자금 등을 책임진답시고 한평생 남의집살이를 전전해온 누이에겐 그 사고뭉치 남편의 암수술비와 병원비 외에는 특별히 도와준 것도 없건만, 늙고 아픈 그를 챙기는 것은 오직 더 늙은 누님뿐이었다. 역시 치사랑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金을 통해, 마지막 희망인 요한을 찾았다. 金은 그제야 아들을 찾는 그가 기가 막혔으나 생존본능과 자식의 도리 운운하자 고민하다 진원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던 것이다.


그러나 張은 버린 아들의 콩팥 하나를 뺏고 싶은 마음만은 아니었다. 물론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장기는 떼어줘도 얼굴은 보지 않겠다는 아들의 고집 앞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죄업을 인정하고 죽음을 각오했다. 이제는 尹의 소식만이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몸속의 수분을 모두 토해내듯 오열했다.


(金이 진원의 결혼소식을 전했을 때 張은 요한이는… 그 아이는 애인이라도 있느냐고 지나가듯 물었다. 여전히 제 엄마를 닮아 계집애처럼 예쁘냐고도 물었다. 저도 자주 보지는 못해서요. 그러나 어깨도 꽤 벌어지고 진원이와 키도 비슷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작더니… 다행이구만. 다 자네와, 자네 처 덕분이야. 이 은혜는…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張은 쓸쓸히 말했다. 둘 사이에서 尹의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 된 지 오래였다.)


한편 金은 아내 몰래 죄수복을 입게 된 尹을 몇 번 면회했지만, 그녀는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저 눈이 맞은 남자와 어디 멀리 떠나 살고 있는 걸로 해달라며.


그러더니 그녀는 출소 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金이 역시 아내 몰래 마련해준 원룸에서 고맙고 죄송하다는 메모 한 장만 남겨놓은 채.


단 둘이 그 방에 있을 때 金이 보여준 아들의 사진을 보며 우는 그녀를 金은 자신도 모르게 안아 달랬었다. 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를 세게 끌어안았고, 하마터면 金은 그녀를 그대로 눕힐 뻔한 사고가 있던 다음날이었다.


金은 차가운 빈방에서 망연자실했다. 방의 주인에게 다시금 사과하러 와서였을까. 아니면 그녀를 안고 싶어서였을까. 金은 그녀와 집사람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尹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더욱 공처가가 되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전제로 尹의 가엾은 아들을 데려오자 아내에게 제안했을 때, 이미 尹에게 연민이 있었던 그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내는 편견이 강했고 욕심도 많은 여자였다. 그러나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마침 尹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약해진 아내는 수락했었다.


그리고 마치 그에 대한 보답처럼, 그토록 기다려도 오지 않던 둘째아이가 그들 내외에게 천사처럼 왔었다. 딸아이까지 낳고 나자 金은 尹에 대한 일말의 정념을 마침내 떨치고, 가슴 아팠으나 아련한 옛사랑마저 드디어 잊고, 선자리에서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죽을 때까지도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만을 원하는 아내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다 친아들과 양아들의 삼각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힘써 잊었던 옛일이 떠올랐다. 그 탓에 더욱 요한이 가여워졌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내는 물론이고 두 아들 중 누구에게도 결코 자백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金은 그저 신께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남자로서, 또 같은 여자를 잠시나마 마음에 두었던 사내로서 그는 張을 이해했다. 자신 역시 떳떳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은 잘못이었다. 그는 張과 尹, 그 불행한 두 남녀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죄는, 그 어떤 작은 죄라도 조금도 사하지 말 것을 신께 간절히 청했다. 대신 그 불행한 남녀의 하나뿐인 자식의 앞날에는 부디 축복과 은혜만을 내려주십사 하는 새로운 기도로 그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cosmic-attic/45


이전 12화내가 사랑한 문장들 a.k.a 자아도취 - 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