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곧 나고 나는 곧 너야.
에피 4. 나의 청춘은 줄곧 우울했다.
그리고 요 며칠 나는 바빴고 굉장히 우울했다.
무기력했고 몸에 힘이 안 들어가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연락에 답장을 하는 것 또한 일처럼 느껴져 휴대폰을 열었다가 바로 닫기 일쑤였고, 이곳(Brunchstory)에서 나는 나의 경험담을 삶에 녹여내며 아자잣! 그래도 파이팅이다!라는 콘셉트를 추구했는데, 글쓴이(=나)가 우울하다 보니 나 자신을 위로해 주는 긍정의 말 따위 나올 리 만무했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도 몇 번이나 갈아엎었고, 결국엔 어떠한 글도 업로드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우울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유를 아는 우울,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우울이기 때문에 결국엔 우울할 수밖에 없는 우울.
내 선에서 어찌할 수 없는 건 내려놓자고 다짐했는데 아.. 여전히 다 내려놓지 못했구나 싶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뙤약볕에 땀이 턱을 따라 내려오다 툭 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걷는 게 힘들어질 즈음, 모퉁이에 어느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사막이 아니었는데도,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난 홀린 듯 그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에어컨 앞 테이블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더위가 가시니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나는 평소 물 탄 듯 연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데,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어딘가 굉장히 진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게, 마시고 나니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백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으로 딱히 할 건 없었지만 노트북을 하지 않아도 딱히 할 게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노트북 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는 17살의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딘가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사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는 게 힘이 드냐고. 아이는 답했다. “제 선에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 힘들어요.” 나는 이 아이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답을 주고자 골똘히 생각했지만, 그럴싸한 해결방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찰나였지만 마치 영겁 같았던 정적의 시간 끝에 나는 입을 떼었다. “쉽지 않겠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건 어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는 거지. 그러고 나서 심호흡을 해봐. 그럼 그 이상의 근심과 걱정은 곧 사그라들 거야.”
아이는 계속해서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죠?"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는 한번 확 울고 털어버리자. 그래도 안 되면 시원하게 소리라도 질러보자. 그리고 노력해 보자. 내 선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그제서야 소녀는 약간의 불안을 거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내 답변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어도 소녀의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아 나는 끝내 안도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시켰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거의 다 녹아있었고, 소녀는 온데간데없었다.
뒤이어 노트북을 가방에 다시 넣고 카페를 나왔다.
밖은 천천히 해가 지고 있었고,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여전히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분은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주변에 있는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불빛들, 흔들리는 들꽃들, 하늘을 가릴 정도로 곧게 뻗은 나무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나는 듣고 있던 음악의 볼륨을 좀 더 키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