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는 것이 연초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들 특히 가계사정으로 인해 내가 내년 6개월을 더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말에 겉으론 태연한 척했으나 속으론 무얼 하며 보내야 하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것도 잠시 며칠이 지나고 아내가 일 년 육아휴직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자연스레 나는 원래 계획대로 내년 3월 복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 놀자고, 나 하고 싶은 것 하자고만 하는 휴직은 아니지만 괜스레 심술이 났다. 줬다가 뺐어간 기분이 들었다.
12월 수영 수강신청도 실패하고 첫째의 이른 방학과 동시에 오롯이 나의 시간이 없어짐이 도래하고 있다는 생각들, 물론 다 변명이겠지만, 나는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게으름에 대처하는 방법
첫번째, 차단하기
대학교 4학년 때 임용고시 준비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할 때의 일이다. 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하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5분, 10분, 30분.... 점점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어갔고, 나는 변기에 앉아 공부할 때 하지 못했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차마 남들이 볼까 무서워 자리에서 보지 못한 웹툰들... 월요일 웹툰, 화요일 웹툰, 요일마다 봐야 할 웹툰들이 꼭 있었다. 페이스북 알람에 친구 근황까지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이미 내가 판단키에 게으름이 절정에 달해있을 때였다. 차마 핸드폰은 버리지 못하고 핸드폰에 있는 어플을 몽땅 지워버렸다. 웹툰을 볼 순 있지만 번거로웠다. 인터넷 어플을 켜고 주소를 입력해 들어가서 로그인을 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조치를 취하니 저절로 웹툰과 기타 핸드폰 어플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덕분에 공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험 후 산더미처럼 쌓인 웹툰들을 몰아볼 수 있었다. 행복했다.
두 번째, 밴드 오브 브라더스 몰아보기
아니, 일상의 게으름이 빠져놓고 무슨 미드를 정주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나에게 아주 남다른 솔루션을 제공해 준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2차 세계대전 공수부대의 일화를 다룬 미국드라마로 매 편 앞, 뒤로 실제 주인공들의 인터뷰가 나올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 연출했음과 더불어 밀리터리 덕후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많은 드라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영양제 주사를 맞은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진다. 그래서 힘들 때나 뭔가 돌파구가 필요할 때, 전환점이 있어야 할 때 이 드라마를 보곤 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미군 전투화가 두 켤레나 있는데 종아리 밑까지 오는 이 전투화 끈을 꽉꽉 동여 메면 마치 나의 집나간 마음을 다 잡아주는 것 같아 밖을 나가 걸을 때 활력이 생긴다.
세 번째, 달리기
평소에 잘 달리지 않는 나. 보통의 사람들이 잘 달리지 않는다. 달리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육중해진 나의 몸은 몇 곱절은 더 나를 힘들게 한다. 특히 추운 날의 달리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하지만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 현관문을 나서는 것은 달리기의 절반은 성공한 샘이다.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해 1분 정도가 되면 후회가 밀려온다. '멈출까?' 그걸 참고 달리다 보면 이번엔 숨이 가빠진다. 자꾸 혀 밑에 침이 고이고 침이 달아진다. 가슴이 아파오고, 종아리가 당겨온다. 오랜만에 뛰어서 발바닥도 아파온다. 이 모든 아픔들을 견디고 10분 정도 달리다 보면 가뿐 숨은 안정이 되고 종아리도 가슴 통증도 완화된다.
무엇보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머릿속 고민과 걱정스러움, 짜증 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털털 털어져 없어진다는 점이다.
내일부터 격일로 아내가 아이들을 재울 때 밴드 오브 브라더스 한 편씩 보고, 아침에 애들 등원시키고 5km 달리기 하고, 내 핸드폰에 유튜브, 카페 어플, sns 어플 모조리 삭제해야겠다. 나의 남은 휴직 기간을 이롭게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