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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stavo kim 김성한 Oct 27. 2024

나는 클레어몬트에 살고 차가 없다

랭귀지 스쿨 등록을 하고 학생비자를 받아 다시 미국에 입국하는 감회가 참으로 새로웠다. 십몇 년 전 나중에 공부를 시켜 준다며 삼촌이 미국에 와서 일하라고 했을 때 불법 체류라는 사실이 걸려 브라질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만약 삼촌 따라갔었다면 불법 체류하고 쫓겨나서 다시는 미국 비자를 못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봐도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나는 학교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클레몬트(Clairemont)라는 곳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클레몬트는 중하류층이 사는 곳으로 학생들이 살기 꺼리는 곳이었다. 학교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40분 이상 통학해야 하는데 반해 UC샌디에이고 소속 랭귀지 스쿨은 아주 깨끗하고 좋은 학교였다. 3개월 코스로, 한국과 브라질·일본·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했다. 공부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철인 3종 연습을 하러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늘 뛰어다녔다. 내가 날마다 뛰어다니자 친구들이 나에게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다. 샌디에이고는 참 아름다운 휴양도시다.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의 하나다. 겨울에도 가을의 날씨 정도로 춥지 않고 사막을 개척한 땅이라 거의 대부분이 화창하고 건조한 날씨 여서 야외생활하기가 매우 좋았다. 학교도 라호야(La Jolla)라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예쁜 해변가에 있어서 해변에서 수영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한 뒤 뛰어서 해변으로 가기도 했다. 자전거로 해변도로를 따라 트레이닝하기에 최적의 도시다. 비록 대학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랭귀지를 하고 있었으나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서 공부하고 운동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나는 십 대에 브라질로 이민을 가서 사춘기에 좋은 경험을 많이 했는데, 또 삼십 대에 미국에 유학을 와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참 행운아인 것 같다. 


정신없이 바빴던 십 대, 이십 대 때와 달리 미국 랭귀지 스쿨에서 영어를 배우며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내 인생에 새로운 에너지였다. 이제까지 어려운 생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기회를 맘껏 활용해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랭귀지 스쿨을 거의 마칠 때쯤 쫑파티를 했다. 각반의 대표가 나와서 아주 짤막한 연설이나 장기자랑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우리 반의 대표가 되어 우리 반 담임과 연설 연습을 준비했다. 드디어 파티 날이 되었다. 남들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자동차로 파티 장소로 이동했는데 나는 차가 없어 당시 구입한 5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배낭에 파티 복을 넣어 한 시간 정도 자전거로 달려야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려 파티 시간에 임박해 도착했다. 부랴부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해 간 연설을 외우고 있었다. 


좀 긴장했던지 싸 가지고 간 싸구려 위스키를 몇 잔 마셨더니 긴장이 풀렸다. 미국에 처음 와서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연설하는 것이라 좀 떨었던 것 같다. 시간은 가까워오고 위스키를 마시면 마실수록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 계속 마셔 댔다. 시작하기 5분 전 술김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준비해 간 연설문은 너무 따분한 내용인 것 같아. 좀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연설을 해야지.’ 내 나름대로 연설을 갑자기 바꾸기로 결심했다. 내가 연설할 차례가 되었는데 수백 명의 학생들 앞에 올라가자 술기운도 있고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갑자기 청중들이 ‘와’ 하고 격려의 환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첫말을 이렇게 시작하였다. 


" I live in Claremont and I have no car. "

사람들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하고 상당히 궁금해하며, 모든 청중의 주위를 순식간에 끌었다. 다시 한번 박수갈채를 받으며 다음을 이렇게 이어나갔다. 


“So I came here by bike. I was so tired so I had a lot of cheap whisky and I don't remember my speech now. Who knows if I have one more."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싸구려 위스크를 마구 마셨다. 그리고 연설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잔 더 마셔 볼까) 그러고 나서 주머니에 있는 위스키를 빼서 청중들 앞에서 한잔을 더 마셨다. 엉뚱한 내 행동을 본 사람들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하나둘씩 배꼽을 잡고 웃으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긴장도 풀리고 정신이 들어 준비했던 연설문이 생각났다. ‘이 정도 웃겼으면 됐지’ 싶어서 이미 준비해 가져온 각본대로 연설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각본대로 연설을 시작했다.


"My grand father said life is…" (우리 할아버지왈 인생이란..)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또 다른 엉뚱한 연설을 하나 싶어서 웃어댔다. 이것이 진짜 연설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청중들은 내가 진짜 연설을 하지 않고 또 웃기려 하는구나 하고 한마디 할 때마다 웃어댔다. 아무튼 나의 연설은 성공이었다. 강당을 내려오자마자 교장선생님과 그 외 사람들이 나를 안아주며 나에게 말했다.


“구스타보, 당신의 연설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들어본 연설문 중에 최고였어!” 

나는 전부터 나에게 관심 한번 주지 않았던 일본 여자 아이들도 나의 연설을 들은 후 너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 웃겼다고 나에게 다가와서 말해 주었다. 어수룩하고 엉뚱한 나의 연설은 잠시 나를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재미있게 잘하고 관심을 끄는 재능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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