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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영 Oct 14. 2024

[소설] 이루다 3  그런 날은 오지 않아

지상에 있는 것은 누리끼리한 빛을 축 늘어뜨리는 가로등과 창백한 루다뿐이었다. 루다를 내려준 셔틀은 후미등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해가 진 밤은 땅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하고 캄캄했다.

루다는 가로등 빛에 더 낡아 뵈는 출입문 앞에서 서성였다. 평생 안전을 지켜준 문인데 오늘은 뭔지 모르게 꺼림칙했다. 딱 무엇 때문이라고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알 수 없는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방과 방 사이를 잇는 문을 제외하고 파트리아의 모든 출입문은 맨홀 뚜껑과 비슷했다. 땅바닥에 붙은 은회색 직사각형 모양의 철문을 열면 지하로 쭉 뻗은 계단이 나왔고, 3m 정도 계단을 내려가야 비로소 실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출입문과 가로등, 가로등에 달린 집 호수 판의 모양은 파키오에서 규정한 규격이어야만 했다. 


길 양쪽으로 나란히 일렬로 있는 출입문의 모양이 모두 똑같아서 사람들은 집도 못 찾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염려는 없었다. 집 근처를 지나면 자기 집 센서가 알아서 가로등을 점등하여 알려 주거나 집주인에게 인사했다. 무엇보다 셔틀 없이 혼자 이동할 일은 없었기에 모양이 똑같은 것은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셔틀이 알아서 정확히 집 앞에 내려주었으니까.


출입문 앞에서 기다리니 센서가 문을 열어 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잘 다녀왔어? 들어갈래?”

지친 표정의 루다가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궁금한 게 많은 센서가 빠르게 문을 닫으며 물었다.

“오늘은 어땠어? 좀 피곤해 보이는데? 가서 적응하려면 알아야 할 게 많긴 해. 여기랑은 완전 다른 세상이니까.”

루다는 대꾸하지 않고 기다란 소파 위에 모로 누워 낡디 낡은 카펫을 어루만졌다. 손가락으로 원을 빙빙 그렸다가, 선을 반복해서 긋기도 했다가, 톡톡 두드렸다가, 쓰다듬기를 반복했다. 오랜 습관이었다.

     



센서는 이 집에 처음 달린 날, 카펫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루다를 기억했다. 엄마는 사라지고 아빠는 ‘안식의 집’으로 옮겨져 혼자 남은 아이였다. 얼굴은 볼품없이 야위었고, 팔다리가 가늘고, 키도 또래보다 적었다. 

루다처럼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아이들 집에는 센서가 달렸다. 집안의 안전을 지키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배치하거나 꺼내 주고, 소소한 일들을 챙기곤 했다. 말벗이 되어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도 했다.

그런데 루다는 처음 만난 날부터 거의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애를 먹였다. 아무리 말을 시켜도 멍하니 앉아만 있길래 멍청이 거나 귀머거리인 줄 알았다. 카펫에 엎드려 울다 잠들었다 깨면 또 우니 환장한다는 말의 적절한 용례를 알 것 같았다. 


센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하급 AI라 시청의 승낙 없이는 다른 집에 배치되기가 어려웠다. 이 집을 벗어나려면 저 꼬맹이를 완전히 이 집에서 내보내야 했다.

“쓸모없는 녀석. 파키오는 너처럼 쓸모없는 사람은 거두지 않아. 지금 파키오가 베푼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는 있니? 네 의무를 모르는 건 아니지? 대여섯 살 애들도 아는 걸 말야. 의무를 다하지 않을 거면 그냥 얼른 ‘안식의 집’으로 가. 그래야 나도 다른 집 가서 일도 하고 승진도 할 거 아냐.”

가차 없이 퍼붓는 폭언을 가만히 듣던 루다가 고개를 들어 센서를 봤다. 센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가 뜨끔거린다는 거군. 아직 열 살인데 너무 했나.’


“어떻게 해야 해?”

“응?” AI 답지 않게 멍청하게 대꾸한 것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해야 네가 승진하냐구. 승진하면 좋아?”

“그야 당연히 좋지. 내 첫 임무는 널 잘 키우는 거거든. 임무를 완수하면 중앙 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어. 그러면 여러 센서가 일하는 걸 관리하는 관리직이 된다는 거지.”

루다의 눈이 똥그래졌다.

“첫 임무면 너도 애 아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인간이랑 어떻게 비교를 해? 나는 수많은 데이터를 장착한 최신 센서야.”


“알겠어. 센서.”

“무얼?”

“같이 해 보자.”

“루다,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완전한 문장으로…….”

“같이… 어른이 되어 보자.”          


왜 마음을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이후로 루다는 차츰차츰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성장 프로그램대로 운동하고 식사 시간을 지켜 꼬박꼬박 먹으니 살도 올랐다. 웃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울지도 않았다. 그저 가끔씩 마을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받거나 또래 아이들에게 골탕 먹은 날이면 카펫 위에 온종일 누워 있다 잠들곤 했다. 

나이가 들고 험담에 단련된 후부터는 카펫에서 잠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에는 꼭 저렇게 누워 카펫을 매만지다가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카펫도 가져갈래? 원하면 짐에 같이 쌀게.”

“아냐. 이건 여기 있는 게 나아. 이 집을 지켜야지.”

“그 카펫 안 만지고는 잠도 못 자면서 챙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냐. 카펫은 이곳에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센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루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이주야. 새로운 곳에서 완전하게 행복한 삶을 시작하는 거라구.”

“센서. 나는 그런 것보다는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고 싶어. 옛날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대. 깨달음을 얻고 인간다워지려고 노력했대. 근데, 사실 잘 모르겠어. 그게 어떤 건지. ‘깨닫는다’라는 것도 모르니까 마음이 답답한 거야. 아는 게 없어서 바보 같아. 그래서 그들이 경험을 통해 알아냈다고 하니까, 그들처럼 뭐든 해 보고 싶어.”

루다는 계속 카펫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근데 이상하지? 이미 인간인데 왜 인간다워지려고 했을까? 나 진짜 멍청하지. 넌 알아?”

센서는 답하지 않았다.

“센서, 너도 모르는 거야?”

“네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

“왜?”

“난 센서지, 인간이 아니니까. 센서가 센서이듯 인간도 그냥 인간이야. 우린 이 세계의 규칙을 지키며 살면 돼. 그게 다야. 그리고 어쩐지 네가 알고 싶은 것은 널 위험하게 할 것 같다.”

센서의 말에 생각에 잠긴 루다가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 루다를 조용히 지켜보던 센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루다, 누가 너에게 그런 얘기를 했는지, 무엇을 보여줬는지 모르겠지만, YO일 리는 없고……. 다시는 그 사람을 안 만나면 좋겠다.”

“응……. 걱정 마. 이제 만날 수 없으니까.”

루다는 그 사람을 두둔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쓸쓸하게 말했다. 


“그래, 이제 떠나니까. 얼른 자자. 그래야 내일이 오지.”

“센서, 나랑 같이 갈래? 메디움에 가면 너한테 딱 맞는 최신 몸을 구할 수 있을 거야. 나 너 몸 정도는 살 수 있어.”

“나는 보상을 받아야지. 내 목표가 뭐였는지 기억나?”

“응. 중앙 시스템에 편입되어 관리직이 되는 거.”

“그래. 맞아. 이제 얼른 자.”

“센서, 고마워.”

십 년을 동고동락하며 센서는 항상 루다에게 최선을 다했다. 센서의 대답이 답답한 루다의 마음을 풀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루다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센서가 사사건건 감시한다고 생각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센서는 루다의 일과와 건강 상태, 피부 상태, 심리 상태를 기록해 보고할 의무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외로운 루다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센서는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침실로 가는 통로의 불을 켰다. 루다가 침실로 들어가면 이제 침대에 달린 간접등을 켤 차례다. 이곳에서 마지막 밤, 마지막 잠을 자는 루다를 위해 하는 마지막 일이 될 터였다.

“그런데 루다.”

막 침실로 들어가려는 루다를 불러 세웠다. 

“나는 왜 이름이 없어? 다른 센서들은 다 이름이 있던데, 나만 끝까지 센서야.”

센서라고 해서 아주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럽다는 단어가 인식되어 있으니까 상황에 따라 부러움을 인식한다. 서운함도 마찬가지다. 루다는 센서에게 미안해졌다. 이유를 알면 덜 서운할까.

“정들면 곤란하니까. 나는 떠나야 할 사람이잖아.”


센서가 전등을 전부 꺼버렸다. 세상은 칠흑이었다. 문득 할아버지를 감춘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빛이라곤 한 톨도 없는 곳에서 할아버지는 정말 편안했을까?’

온종일 이어진 교육으로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루다는 옆으로 누웠다가 똑바로 누웠다가 엎드려도 보았다. 이불을 끌어당겨 돌돌 말아 껴안아 보기도 했다.           


“센서. 요즘 계속 메디움에 대해 배우잖아. 길 찾는 거, 물건 사는 거, 시민 등록하는 거, 교통 이용하는 거도 보고 가게도 보고 집들도 봤어. 하늘을 뚫을 것 같은 건물이랑 대규모 공장 단지도 영상에 나왔어. 정말 신기하더라. 모든 것이 다 땅 위에 있었어. 집도, 시청도 다 땅 위에 있잖아. 그러니까 막 공중에 떠 있는 거 같은 거야. 문도 신기해. 출입문이 땅과 직각으로 세워져 있어. 너무 이상했어. 우리 파트리아는 집도 땅속에 있고, 사람도 땅속에 살고, 문도 땅에 달려 있는데. 근데 메디움도, 파키오도 지구를 본뜬 거래. 센서, 근데 너도 알잖아. 아주아주 먼 옛날 파트리아가 지구라 불렸던 거 말야.”

센서는 조용히 루다의 말을 들어주었다.


“있잖아. 우리 시청은 돔 안에 있잖아. 그 돔 안에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시청에 가면 셔틀 안에서 그것들을 볼 수 있잖아. 정말 탐스럽더라. 우리는 돔을 넓히면 작은 나무들을 더 심을 수 있다는데. 거기엔 돔도 없는 그 너른 땅에 나무들도 많았어. 믿어지니?.”


“내가 YO에게 메디움에 가고 싶다고 한 날 말야. 그날 대기실에서 ‘어제’가 수레국화밭을 보여줬거든. 홀로그램이지만 꽃이 정말 싱그러웠어. 어떤 향기가 날지 너무 궁금했거든. ‘어제’가 옛날 지구 모습인 건 너도 알지. 그런데 메디움 영상에 나온 꽃밭이 ‘어제’랑 너무 닮은 거야. 메디움에 가면 그 꽃밭을 직접 볼 수 있을까,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어.”


“시청에서는 돔 안에서 사람들이 살날이 올 거래. 또 우리가 더 노력하면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고, 그럼, 언젠가는 우리 시에 신도시를 만들 수 있댔어. 정말 그런 날이 올까? 그날은 언제일까?”

센서는 대답 대신 루다가 보았다는 수레국화향을 검색해 비슷한 수면향을 루다의 방에 뿌려 주었다. 루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센서,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 내가 다시 돌아오면 그땐 네 이름을 지어 줄게.”

“정말이야?”

“응. 약속해.”

루다는 더 이상 뒤척이지 않았다. 센서는 루다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힘없이 속삭였다.

그런 날은 오지 않아, 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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