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채집하지 못한 날들

30. 진달래꽃잎처럼 흔들리던 봄

by 조유상


1999년 11월 13일, 우리는 학교 앞 집으로 이사 가자마자 짐을 풀고 다음 주에 집 바로 옆 밭을 갈아 마늘부터 심었다. 보통 10월 중순 경부터 심기 시작하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아직 얼지 않은 땅은 마늘 씨앗을 받아 안았다. 아주 늦지 않게 밭에 마늘을 쪼개 심고 나니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좋고, 보기만 해도 푸근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이사 간 이듬해와 다음 해에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남편이 다니던 신협을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 일을 그만둔다는 게 어디 쉽나. 그것도 어린아이와 만삭의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까지 있는 남편이자 아빠로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큰 결심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는 신협에 차기 전무로 내정된 사람이었건만 참, 어려운 상사를 만났고 그만두기 전 갈등은 구구절절하다. 술을 한두 잔 정도 즐기기만 할 뿐이던 그가 즐겁게 마시기보다 괴롭게 마시는 날이 길어졌다. 동료들과 힘든 이야기를 하고 오면 산달이 5월인 내게 미주알고주알 회사에서 있던 이야기를 무한 반복 하소연하는 그가 점점 더 버거워졌다.


3번 유산한 뒤 낙태된 영혼을 위한 일 년간의 기도 끝에 간신히 생명을 잉태했는데, 내 나이 꽉 찬 42살. 첫아이 때는 시키는 대로 기형아 검사를 얼떨결에 했지만 둘째 때는 그걸 포기하기로 했었다. 이미 기적처럼 주어진 생명인데 만에 하나 기형아더라도 주신대로 받아 안기로 결심했던 터였기에, 검사를 해 본들 낙태는 안 할 테고 불안만 더 커질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했다지만 매 순간 나는 흔들리고 불안했다. 이런 나의 불안은 온전히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남편과 공유되지 않았고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하늘, 당신의 뜻을 받아 안기에 나의 그릇은 종지만 했고 내 불안은 시시각각 커져만 갔다. 불안을 잊는 시간보다 수시로 떠오르는 불안은 그 어떤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았고, 악성종양처럼 커지는 불안을 막아줄 아무런 약도 처방전도 없었다. 매일매일 혹시나 기형아가 태어나면 나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를 뇌리에서 한시도 지울 수 없던 시기였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몇 달씩 직장에서의 비리와 갈등을 말하는 그를 보기가 더 힘들었다. 참 무던히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는 집에 와 밥 먹고 아이와 놀기도 하고 지내다 잠자리에 들면 바로 코를 골며 자던 사람이었는데, 직장에서 문제가 심각해지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간이 길게 반복되었다. 보다 못해 배불뚝이인 나는 충분하다 싶어 그에게 스르릉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듯 말했다. "내가 벌어먹여 살릴게, 당장 그만둬요!" 하고. 나는 뭔 배짱으로 그런 말을 했던가. 배짱만 있었을 뿐 대책은 전혀 없었건만. 일단 그를 그 소굴에서 건져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걸 더는 볼 인내심도 바닥이 났었고. 내 결정적인 말 한마디에 용기가 났는지 그는 드디어 반년 넘게 괴로워하던 직장을 때려치우게 되었다. 신협 이사장이었던 주** 선생은 우리 집에 거의 날마다 찾아와 다시 돌아오라 간청했다. 조금만 참으면 당신이 전무가 될 거 아니냐며. 하지만 나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우리 농사지으며 마음 편히 삽시다' 하며 남편이 마음 약해질까 쐐기를 박듯 말했다. 직책이나 일, 돈보다 그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스트레스로 무너질까 걱정이 앞섰다.


2002년 그해 봄, 그가 3월 말에 사표를 내고 나자 매일 찾아와 사표 반려를 설득하려는 이사장님을 피해 우리는 오서산으로 도망가기도 여러 번 했다. 오서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섯 살 배기 큰아들 손을 잡고 남산만큼 불러온 배를 안고 내가 올라가야 얼마나 올라갔겠는가? 조금 헉헉대며 올라가는 체하다 똘똘 뭉치는 배를 안고 바닥에 앉아 다섯살 배기 큰 아이를 어루만지다 힘들다 말하는 뱃속의 아이를 진정시키곤 해야 했다. 마침 진달래 철이었다. 아직 초록이 더딘 산 언덕에 주저 앉아 꽃 핀 진달래를 바라보며 하염없어졌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만삭의 몸으로 남편은 직장을 그만뒀지, 막막한 앞날에도 피어나 지천인 진달래는 아름답게 눈앞에 어룽댔다. 연분홍 진달래를 한움큼 따다 찹쌀가루 물그름하게 전을 지져 진달래 꽃잎 얹은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대책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미처 말하지 못한 불안은 진달래꽃이 달래주었으려나.


매년 3월 말 4월 초 진달래 철만 되면, 우리가 입밖에 내지 못한 불안한 미래가 바람에 흔들리던 연분홍 진달래꽃처럼 파르르 떨던 기억이 다시 찾아온다. 2002년 봄은 그렇게 흔들리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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