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의 둘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우버를 타고 기차를 갈아타며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비에 젖은 시카고의 거리와 건물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바지와 신발이 젖는 일은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비가 내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운타운에 도착하니, 비에 젖은 시카고는 더 깊고 차분하게 다가왔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우산을 든 사람들의 발걸음, 그리고 빗물에 반사된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드는 듯했다. 나는 브런치 카페에 들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며 여행 책자를 펼쳤다. 미술관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보내며 생각에 잠기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로 아직 뭘 먹어야 할 지 몰랐던 때
축축함은 잠시 잊고, 작품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려 애썼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수많은 명작들이 실제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특히 유럽에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작품들이 시카고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조르주 쇠라의 ‘일요일 오후의 섬에서의 점심’ 앞에서 한참을 서서 그림 속에 빠져들었다. 빗속에서 고요했던 거리처럼, 이 그림 속 풍경 역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 정적인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그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시카고 미술관의 사자 상
마침 반 고흐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그의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관에 들어갔다. 그의 붓질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비 오는 날의 미술관은 이런 감정들이 더 차분히 가라앉고, 나 스스로와 대면할 수 있게 해주는, 정말이지 최고의 장소였다.
침실도 보고, 해바라기도 보고
미술관을 충분히 둘러본 후, 시카고 피자를 먹으러 갔다. 비에 흠뻑 젖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피자와 커피로 녹이며 마음도 함께 풀어졌다. 죠디노스에서 주문한 시카고 피자는 치즈가 듬뿍 들어간 두꺼운 도우 덕분에 마치 치즈 파이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자, 문득 이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혼자였지만, 그 따뜻한 음식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따뜻한 한 끼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주는 듯했다.
시카고에서 먹은 시카고 피자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기차에 오르려는 순간, 이사벨이 나를 불러 네이퍼빌에서 내렸다. 비에 젖은 도시에서 벗어나,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사벨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오늘 비록 하루를 혼자 보냈지만, 외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길게 이어지더라도, 그 고독이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언제부터 비를 싫어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비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즐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비가 오는 날을 곧 잘 즐기는 방법을 하나 더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