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은 그렇게 살았으니까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상에 적응이 필요한 법. 평일에는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지냈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으니 잠시 소개하자면, 나는 크리시와 네이든, 그리고 리오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에어비앤비와는 조금 다른, 마치 하숙처럼 홈스테이 형식이었다. 크리시는 나보다 10살 많은 엄마였고, 네이든은 초등학생. 그 둘은 정말 단란하고 귀여운 가족이었다.
크리시에게 한국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이웃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잘 안다며 매일 파티하는 나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서울이 “시티 네버 슬립”이라고 하긴 하지만, 북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고 내가 웃으며 답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어느 날 위스키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가까워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칼을 들어 한식을 요리해 주면서, 더욱 친밀해졌다. 크리시는 요리에 소질이 없었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정말 좋아했다. 네이든도 호기심이 많아, 매운 음식이든 짠 음식이든 내가 만든 음식을 즐겨 먹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나는 그들의 홈 메이트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리오, 이 녀석은 고양이지만 전형적인 고양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산책을 좋아하고, 사람의 손길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면, 전생에 강아지였을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것도 일상이었는데, 강아지였다면 “밥 주세요!”라고 외쳤을 텐데, 리오는 그저 내 배 위에 앉아서 “일어나 봐, 이제 뭘 해야겠어?”라는 눈빛을 보냈다.
주말에는 다시 D.C.로 갔다. 이번엔 혼자였다. 제일 먼저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둘러봤다. 우주 박물관을 예약하고, 자연사 박물관도 기대했다. 혼자서 돌아다니는 게 어색할 줄 알았지만,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속도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여유로웠다. 우주 박물관에서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부터 우주 탐사선까지 다양한 전시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구경하게 됐다.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거대한 공룡 뼈와 매머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구의 과거부터 미래까지를 담고 있는 방대한 전시물에 압도되면서도, 그 순간 나는 마치 시간을 초월한 느낌을 받았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엔 조지타운으로 향했다. 유명한 컵케이크 가게에서 달콤한 컵케이크를 먹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옷도 몇 벌 샀다. 그런데 미국 물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공원에 있는 음식점에서 10달러가 넘는 수프를 시켜 빵에 찍어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셨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은 회사 탕비실에서 쿠키와 비타민 워터를 챙겨 나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물가가 워낙 높아서 절약해야 했지만, 이런 작은 경험들도 결국 나에게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미국에 온 것을 교우회에 알리자, 락빌에 사는 학교 선배님이 나를 찾아와 주셨다. 모르는 사이였지만,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챙겨주는 선배님의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선배는 트레이더 조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골라 담아주며 “돈 없을 땐, 체리 한 바구니 사서 먹으면 돼”라며 웃었다. 그 말에 타지 생활의 짠 내가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함께 장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후 한식당에 가서 파전과 육개장을 주문했는데, 파전에 파프리카가 들어 있었고 육개장도 어딘가 낯설었다. 선배는 웃으며 “이게 코리안 아메리칸 푸드지 뭐”라고 말했다. 한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집밥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덕분에 서서히 이곳에 적응해 가는 나를 발견했다. 외로울 법도 했지만, 이곳만의 따뜻한 유대감이 나를 채워주었다. 미국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는 한시적 미국인이 되어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