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었던 거였을까?
이별을 직감하던 그때, 나는 버려진 내 모습이 미워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을 붙잡으려는 듯, 오랜만에 옛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고등학교 친구 지연이었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에서, 지연의 언니 나연이 누나가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볼티모어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 있을 줄 알았던 누나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래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누나에게 연락했고, 주말에 워싱턴 D.C.에서 만나기로 했다.
워싱턴 D.C.는 내가 지내던 곳에서 지하철로 약 40분 거리였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일상이 아직 서툴렀지만, 그날만큼은 복잡한 감정들을 잠시 내려놓고 나연 누나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D.C.로 향했다. 유니언 역에 도착하니 광활한 광장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설렘이 자연스레 밀려왔다. 누나는 기차를 타고 오기로 했고, 나는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누나가 도착할 때까지 역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가 도착했고, 우리는 D.C. 주립대 근처 피자가게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서툰 영어로 피자를 주문하면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누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피자를 먹으며 우리는 고등학교 때 과학 경진대회에서 경합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십 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이 새삼스러웠다.
미국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유학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한국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게 공부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다. 그래서 오랜 유학 생활을 한 누나에게 타지 생활에 대해 많이 물었다.
“누나는 혼자 유학 생활하면서 힘들지 않아?”
“힘들지.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는 가봐야지.”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나도 그렇게 버티며 나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내가 좋았던 걸까, 아니면 단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내가 정말 되고 싶었던 모습은 따로 있었던 건 아닐까.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달리기만 했던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잃어버린 내 모습에 대한 고민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이후 누나와 함께 링컨 기념관으로 향했다. 날씨는 맑았고, 기념관 앞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링컨 동상 앞에서 멈춰 사진을 찍었다. 누나는 익숙한 듯 포즈를 취했고, 나는 그 모습을 따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십 년 만에 만난 누나와 워싱턴 D.C.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닌, 오랜만에 만난 누나와의 특별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에는 누나가 궁금해하던 차이나타운에서 타코를 먹었다. 아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누나는 유학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힘든 순간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버텨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지금의 어려움이 언젠가 나를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우버를 타고 유명한 컵케이크 가게에 들러 작은 컵케이크를 샀다. 누나는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러 와주었고,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챙겨주었다. 혼자 타지에서 지내며 여유롭지 않을 텐데도 이런 배려가 고마웠다. 컵케이크로는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누나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랐다.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찾기로. 돌아가고 싶은 건 그 시절의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었다. 천천히 이 여정을 마친 끝에는 내가 사랑한 내 모습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늘 내 모습을 좋아했으니까.
누나와 함께한 하루는 앞으로 걸어갈 여정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마치 그 달콤한 컵케이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