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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花이팅

나의 화초들을 향한 소극적 응원

by 언덕파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승진을 하거나 사무실 이전, 개업을 하면 축하 화분을 보내는 것 말이다. 요란하지 않은 응원처럼, 말 대신 보내는 인사 같은. 작년 이맘때쯤 지금 사무실로 왔을 때 받은 화분이 딱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생존해 있는' 화분이 하나 있다. 나는 화초를 잘 못 키운다. 방법을 몰라서도 있지만, 자주 관심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지인들이 혹시라도 화분을 보낸다고 하면 살짝 사양하겠다는 의사를 귀띔해두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한 화분이 오고야 말았다. 이미 도착한 화분을 되돌려 보낼 수도 없어서 감사히 잘 받았다고 회신을 드렸다. 처음 도착했을 때 그 화초는 참 예뻤다. 싱싱했다. 마치 20대의 청춘처럼 화사했고, 키가 크진 않았지만, 기세는 꼿꼿했다. 대략 1미터 정도 되는 높이. 나는 이 화초의 이름을 모른다. 네이버에 검색도 해봤지만 비슷한 잎을 가진 식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결국 이름을 모르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그동안 내기 키운(?) 화초는 몇 개였을까. 이사 다니며 집에 들였던 화초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첫 화초는 아마 5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분당에서 왕십리로 이사하던 무렵 호기롭게 해피트리라는 거대한 화초를 거실에 들인 적이 있다. 집 안에 녹색이 있는 게 좋아 보였고, 그게 뭔가 삶을 잘 꾸리는 사람 같아 보여서.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정성껏 키웠다. 물도 제때 주고, 환기도 적절히 해줬다. 하지만 내가 출근하면 아무도 없는 빈 집을 지키는 외로운 화초였다. 이름처럼 해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맥시멈 핑크 목마가렛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 즈음,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잎이 시들해지더니, 병이 든 것처럼 전염되듯 빠르게 번져갔다. 지켜보는 게 마음 아팠다. 무력하게 시들어가는 화초 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썼지만 결국 가을쯤엔 분리수거로 떠나보냈다. 그때 이후로 작은 화분조차 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성을 들인다고 모든 게 살아나는 건 아니구나.'


지금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화분도 사실 싱싱하진 않다. 전적으로 내 무관심 때문이다. 출근하면 창문을 열고, 틈틈이 물도 준다. 그런데도 도리 없다. 잎의 색은 옅어지고, 가지 끝은 말라가고 있다. 마치 가을 공원의 나뭇잎처럼 조용히 색이 빠져나간다. 언젠가는 이 화분도 보내야 할까. 그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조금은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어젠 비가 왔다. 한창 좋을 때인 꽃들은 반겼을 날씨다. 점심 먹으러 어린이 대공원 근처에 갔다가 일행들과 공원 길을 천천히 걸었다. 봄꽃들 천지다. 비가 살짝 내려 눅눅했지만 사진 속 꽃들은 선명했다. 봄기운을 힘껏 뿜어내는 생명체들이 대견하다. 여름이 오기 전, 마지막 빛을 내고 있는 그들에게 어쩐지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얘들아, 花이팅 하자.



화초와는 인연이 없을 거 같아 포기하던 차에, 오늘 누나로부터 작은 화분 몇 개를 배송받았다. 혼자 키우다 또 버려지면 어떡하나 싶어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거실에 놓고 키워보라고 한다. 해서 이름을 물어봤다. 꽃처럼 예쁘다. 수국, 맥시멈 핑크 목마가렛, 아라미스 화이트 목마가렛 3종이다. 크지 않아서 앙증맞고 귀엽다. 보살핌이 필요할 사이즈인데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소리를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오디오 옆 자리에 앉혔다. 첫 곡으로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화초들에게 나지막이 응원 겸 부탁을 했다.



얘들아, 花이팅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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