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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려고 애쓰지 마라– 안경 클립의 광고적 반전

by 언덕파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햇빛은 쨍하고, 눈은 번쩍이는데
그걸 마주하기엔 너무 피곤한 날.

나는 렌즈 낀 날엔 일반 선글라스를 쓰지만,
도수 있는 안경을 쓴 날엔
이 친구를 꺼낸다.
안경 위에 ‘탁’ 하고 끼우는 클립형 선글라스.

간편하다. 시력 안 좋은 사람들의 선글라스로 제격이다.
그리고 은근히 멋스럽다.
살짝 스파이 느낌도 난다.
말은 안 해도, ‘나 지금 집중 중이야’ 같은 아우라가 생긴달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물건 참 이상하다.
눈을 가리는 건데,
오히려 세상이 잘 보이게 만든다.

빛을 막아 시야를 좁히는데,
시야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보기 싫은 걸 가려냈더니,
보고 싶은 게 또렷해진다.



33.jpg 안경 클립의 광고적 반전



광고도 그렇다.
뭔가 더 보여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핵심은 자꾸 흐려진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한 줄 카피.

한 장 이미지.

한 개의 장면.

브랜드는 모든 걸 말해서 설득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고 덜어내서
‘그 한순간’을 명확하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안경 클립을 쓰는 이유도 같다.
불필요한 빛을 덜어내고,
내가 보고 싶은 방향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니까.
그게 진짜 ‘보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쯤 되니
나는 안경 클립이 아니라
브랜드 얘기를 하고 있었단 걸 깨닫는다.



[한 줄 카피]


더 보려고 애쓰지 마라.

진짜 보이는 건, 덜어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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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