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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형태를 닮은 정교한 제한-매직마우스

by 언덕파

아침 미팅 중, 팀장이 낡은 무언가를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누가 아직도 이걸 쓰냐고 디자이너 차장이 묻네요 무선 마우스 시대에...”

자세히 보니, 한때 ‘디자인의 끝’이라 불렸던 애플 유선 마우스였다.

이걸로 최근까지 디자인 작업을 했다고? 미안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물이었다. 애플의 구닥다리 마우스.
하얀 유광 표면은 여전히 번쩍였지만, 케이블은 이미 생명선을 잃은 지 오래.
속이 다 드러난 전선, 휘어지고 갈라진 목덜미처럼
그 모습이 마치 오래 버틴 사람의 뒷모습 같았다.



그야말로 유물이었다. 애플의 구닥다리 유선마우스.



순간, 엉뚱한 감정이 앞섰다.
‘마우스의 목이 아팠겠다’는 생각.
고생 많았겠다. 이제 좀 쉬어도 된다고,
사물 하나 앞에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대부분 ‘시간’에서 비롯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오래된 것들과 참 정이 많이 든다.

10년 넘게 몇 번이나 고쳐 쓰고 있는 차,

잉크가 번져도 놓지 못한 만년필,

벌써 7년째 휘두르고 있는 골프클럽,

오래 입어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가볍고 따뜻한 러닝용 바람막이,

그리고… 10년 전에 밑줄 그었던 책들.

그 반복의 시간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다.


관리팀에 마우스를 교체해 달라 얘기하고 돌아서는 길.
팀장이 다시 말한다.
“결국 매직마우스 쓰게 되겠네요.”

그러자 불현듯, 내 책상 위의 애플 매직마우스가 떠올랐다.
처음 이걸 샀을 땐 꽤나 흥분했었던 기억이 난다.
‘매직’이라는 이름처럼 줄도 없고,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했다.
손가락으로 쓱 밀면 페이지가 물처럼 흘렀다.
모든 게 미래처럼 보였던 순간.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묘하게 불편해졌다.
너무 낮은 높이, 손에 꽉 안 차는 둥글둥글함,
충전 단자가 바닥에 붙어 있어 충전 중에는 사용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
줄은 끊었지만, 자유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뭔가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애플은 ‘디자인의 자유’를 준 대신, ‘움직임의 제약’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참는다. 아니, 멋지다고 말한다.


광고도 그렇다.
‘자유롭다’는 말 아래 수많은 제약을 감춘다.
브랜드는 마치 해방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교하게 설계된 흐름 속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매직마우스처럼, 매끄럽지만 정해진 방식.
당신이 편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브랜드가 설계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줄을 끊었다고 해서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포맷을 없앴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무한히 나오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줄 하나가 방향을 잡아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매직마우스를 쓴다.
불편하지만, 그 안에서 애플의 의도를 읽는다.
그게 ‘불편해도 계속 쓰게 만드는 브랜드’의 힘이다.
줄을 끊은 게 아니라, 줄을 숨긴 디자인.



<한 줄 카피>
“우리는 매끄럽게 유도당할 때, 자유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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