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보다, 스스로에게 보너스를 줄 때가 더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여행을 선물한다던지, 입고 싶었던 옷을 산다던지 그런 보상 말이다. 나는 그걸 ‘인생티브’라고 부르기로 했다. 인센티브(Incentive)의 변형이지만, 대상은 오직 나 자신이다. 월급도 상여금도 아니고,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수고했어 나 자신.”이라는 의미의 자기 보상.
몇 주 전, 헬스장에서 쓰던 무선 이어폰이 갑자기 한쪽 소리가 뚝 끊겼다. 이건 마치 요리하다가 칼날이 부러진 셰프 같은 기분이었다. 골퍼에게 드라이버가 부러진 거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음악이 없다는 건, 햄버거에서 패티를 뺀 것과 다름없다. 처음엔 그냥 버텨보려 했다. 헬스클럽에서 틀어주는 음악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나? 그런데 선곡이 문제였다. 늘 같은 가수의 곡들이었고, 장르도 매일 비슷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팝은 단 한 곡도 들리지 않았다. 국내 음악으로만 큐레이션 한 듯했다. 아니면 선곡 담당자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거나 어쨌든 음악과 운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음악이 없는 헬스클럽을 상상해 보라. 쇳소리와 신음소리만 가득한 음침한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가진 음악을 이어폰이 고장나 일방적인 선곡을 강제로 들어야 한다면? 예를 들면 이런 상황들.
내가 스쿼트를 하려는데 ‘발라드’가 흐른다든가, 러닝 속도를 올리는 순간 갑자기 ‘이별 노래’가 나와서 페이스가 꺾인다든가.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같은 브랜드로 새 모델을 살까? 아니면 조금 저렴한 걸로 버틸까? 쇼핑몰에 가서 상담도 받아봤지만 계속 써왔던 브랜드의 음질과 비교불가였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그 브랜드의 신상은 꽤 비쌌다. 수십만원. 이 정도면 대충 ‘그냥 참자’ 쪽으로 결론이 날 법도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즘 얼마나 꾸준히 하고 있는데?” 독서, 글쓰기, 운동 이 3가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렇다고들 한다. 매일 아침 헬스를 하고, 틈틈이 글을 쓰고, 저녁엔 책을 읽는 루틴을 하루도 안 빼먹고 있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평가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왔다. 이 정도면 ‘나 스스로에게 줄 인생티브’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무언가를 구매하려면 이런 핑계라도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결국, 클릭했다. 직구. 여전히 가격은 비쌌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고장 나서 무심히 새 모델을 구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마치 내가 나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느낌이었다.
새 이어폰을 끼고 첫날 헬스장에 갔다. 음악이 귀에 들어오자 몸이 반응했다. 그래, 이 맛이야!
다시다 광고의 멘트처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일방적으로 들리던 음악들은 완벽히 차단된 채
나만의 선곡들을 듣는 느낌이란... 러닝머신 페이스가 올라가고, 덤벨이 가벼워진 듯했다. 듯했다기보다
실제로 가벼웠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분이다. 심지어 거울 속 내 표정이 달라졌다.
‘이래서 인생티브가 필요하구나’ 실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역시 돈값하는구나!"였다.
사실 이런 보상은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된다. 운동 끝나고 사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글을 한 편 쓰고 나서의 조각 케이크, 힘든 하루를 버텨낸 나에게 주는 사우나 20분. 자신에게 주는 인센티브라고 해서 거창할 필욘 없다. 이 모든 게 '인생티브'다. 인생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겐 주는 보상 말이다.
인생티브의 개념은 식물 키우기와 닮았다. 식물은 매일 조금씩 물을 주고, 빛을 쬐게 해 주고, 통풍을 신경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하루에 2리터씩 물을 붓는다고 갑자기 쑥 자라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매일 조금씩, 성의 있게’다. 나에게 주는 인생티브도 그렇다. 한 번에 엄청난 보상을 하는 게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작은 동기를 주는 것. 새 이어폰은 내 운동 루틴에 필요한 ‘물 한 컵’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더 신나게, 더 오래 운동할 수 있었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물 주는 순간마다 “이 물이 오늘 눈에 띄게 변화를 만들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알고 있다. 그 작은 관리가 쌓여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진다는 걸. 인생티브도 마찬가지다. 그날의 한 잔의 커피, 작은 쇼핑, 반나절의 휴식이
언젠가 내 성취와 즐거움으로 자라난다.
인생티브는 누구도 대신 줄 수 없다. 그건 자기만이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고, 그 선물은 ‘꾸준함’이라는 습관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본인만이 안다. 그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이번 달 나의 인생티브는 이어폰이었다. 다음 달엔 뭘 줄까? 새 러닝화? 오래전부터 먹고 싶었던 레스토랑 예약? 아니면 하루 통째로 비워두는 휴식?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그걸 받는 내가 ‘기분 좋아지는가’다.
오늘 당신의 인생티브는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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