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는 늘 그 자리에 있다. 3평 남짓한 금속 상자 안에서,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짧은 여행을 한다. 목적지는 단 몇 층 위나 아래일 뿐이지만, 그 사이에는 묘한 공기층이 생긴다. 말하지 않아도 어색하고, 말해도 어색한 공간.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만의 방공호를 세우고, 누군가는 멍하니 숫자가 바뀌는 패널을 바라본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잠시 같은 배를 탄 승객이 된다.
아침 출근 엘리베이터 앞. 저마다 굳은 각오와 긴장과 기대, 피로가 뒤섞인 작은 출발선 같다. 엘리베이터는 간신히 총무게를 겨우 견디는 중량으로 꾸역꾸역 층들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월드타워 초고속 엘리베이터처럼 아득히 먼 낙원으로 실어다 주면 좋으련만! 이윽고 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저마다의 전장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하는 엘리베이터 안을 들여다보자. 박진영의 엘리베이터 노래가사처럼 설렘과 기대 따위는 없다. 벽은 금속으로 되어 있고, 천장은 적당한 높이다. 안쪽에는 숫자 버튼과 닫힘, 열림, 비상벨이 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거울이 있다. 거울은 그 방을 넓어 보이게 하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기에 있는 내 표정을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누군가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방은 갑자기 더 작아진다. 말을 해도 어색하고, 말을 안 해도 어색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낸다. 아무 알림도 오지 않았는데, 괜히 화면을 켜고 스크롤을 내린다. 사진첩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하고, 날씨 앱을 한 번 보고 다시 홈 화면으로 나온다.
이건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작은 의식 같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내린다. 그 순간 두 부류가 갈린다. 하나는 닫힘 버튼 즉시파다. 왼손이나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버튼을 향해 간다. 동작에 망설임이 없다. 이들은 보통 성격이 빠르다. 회의 시간에 먼저 도착하고, 식당에서도 주문을 바로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불필요한 낭비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자연 닫힘파다. 흔치는 않다. 열에 한 두 명 정도? 버튼에 손을 대지 않는다. “어차피 닫힐 건데 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 짧은 3~5초 동안 숨을 고르고, 다음 층을 준비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밥 먹을 때도 꼭 반찬을 한 번씩 다 맛볼 것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또 다른 부류들이 있다.
층수 관찰파
눈을 들어 숫자판을 뚫어져라 본다. 지금 8층이니, 다음은 9층… 10층… 마치 누군가 이 숫자를 불러줘야 하는 중계 아나운서처럼 이 사람들에게 엘리베이터는 작은 이동 수단이 아니라, 하루 중 잠깐 멍 때릴 수 있는 고요한 시공간이다.
문 열림 과잉 친절파
누군가 타거나 내릴 때마다 열림 버튼을 길게 누르고 있다. 상대방이 인사를 하면 “네, 네” 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거의 경비 아저씨의 친절한 습관이 일반인에게 전염된 버전이다.
닫힘 버튼 눈치파
버튼을 누르긴 하는데, 상대방이 불쾌해할까 봐 아주 살짝, 조심스럽게 누른다. 손가락 끝으로 톡—
마치 ‘나는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무언의 사과를 버튼에 새기는 듯하다.
나는 어떤 부류일까. 솔직히 말하면 상황 따라 달라진다. 아무도 없고 급할 땐 바로 닫힘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괜히 기다린다.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내가 재촉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 몇 초 차이로도 사람 사이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한국 사람 특유의 ‘닫힘 버튼 문화’라는 것도 있다. 유럽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닫힘 버튼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일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은 사실 작동하지 않는 장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여기서는 닫힘 버튼이 ‘권리’처럼 쓰인다. 아침 출근길, 1층 로비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뒤에서 누군가가 ‘왜 안 눌러요?’ 하는 눈빛을 보낸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을 못 견디는 민족이다. 빨리빨리 DNA가 버튼 하나에도 묻어 있다. 나는 가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3평 남짓한 공간은 우리 일상의 축소판 같다고.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층수를 보는 사람, 거울을 보는 사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목적지에 간다. 속도가 다르고, 방법이 다르고, 시선이 다른 것뿐.
결국 우리는 다 도착한다. 그래서 오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힘 버튼을 누른다. 아니면, 그냥 기다린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내 하루도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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