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레 주변 안내도에 머문다. 다음 열차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생긴 습관이다. 역 주변이 궁금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은 지겹기도 하고. 반경 200m에서 500m까지 주변 건물과 명소들을 훑어본다. 딱히 별 다른 호기심은 없다. 그저 아 내 위치가 여기구나, 익숙한 위치표시를 확인하는 잠깐의 시간일 뿐이다. 지하철역 주변 안내도를 보면 늘 만나는 빨간색 좌표 표시. 바로 현 위치(You are here)다. 아침 출근길에 몇 컷 찍었다. 평소엔 스치듯 보고 마는데 오늘은 그 단순한 표시가 갑자기 임팩트 있게 다가왔던 걸까.
지도는 언제나 친절하다. 목적지가 어디든 출발지가 어디든 항상 현재를 알려주고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늘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지나온 길을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정작 빨간 점이 가리키는 ‘지금 여기’를 놓친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
지도가 내게 던지는 건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좌표, 내가 선택해야 할 방향,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내 삶에도 저 빨간 표시처럼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나는 ‘성공’으로 가는 길의 어디쯤일까? ‘행복’이라는 종착역에서 몇 정거장 남았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빨간 점이 삶에도 붙어 있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직 여기입니다'라는 문구가 계속 눈앞에 보인다면, 마치 나의 느림이 드러나는 듯한 압박이 들 것 같으니.
삶은 GPS가 아니다. 경로를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도 없다. 그래서 때로는 길을 잃고, 돌아가고,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모여 결국 나만의 루트를 만든다.
지하철 지도는 직선으로, 간결하게 길을 안내하지만, 삶의 지도는 굽이진 선으로 가득하다. 어디서 막힐지, 어디서 우연히 좋은 풍경을 만날지 모른다. 좌표가 불분명하고 알 수 없어서 더 설레기도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쯤일까?' 그 궁금함이 우리를 계속 걷게 한다.
재밌는 건, 지도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는 거다. 변화도, 평가도 하지 않는다. 그저 빨간 점 하나로 현재를 가리킬 뿐. 반면 사람은 현재를 무시하고, 과거에 머물거나 미래만 바라본다.
너무 앞만 보면 불안해지고, 뒤만 보면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 때로는 멈춰서 '지금 여기'를 확인해야 한다. 빨간 표시를 바라보듯.
어쩌면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빨간 좌표표시가 아니라, 스스로 묻는 습관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 삶이 늘 직선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멈춘 듯 보여도 결국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 그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지도를 바라보다가,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나를 정확히 가리켜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흥미롭고, 더 용기 낼 가치가 있다.
지하철 안내도의 빨간 좌표표시는 현재를 알려주지만, 삶의 빨간 좌표는 내가 스스로 찍어야 한다.
좌표를 몰라 불안한 순간도 있지만, 그 모호함이 인생의 재미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조차, 사실은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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