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매일 아침 손빨래를 한다. 아침 6시 넘어 일어나 헬스장에 간 후 대략 한 시간 만에 돌아온다.
헬스클럽에 사이즈별로 티셔츠와 반바지가 구비되어 있지만 난 개인 운동복을 입는다. 세탁의 번거로움을 선택한 것이다. 땀 흘린 채 돌아와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고 울샴푸를 풀어 입었던 운동복을 넣는 것이다. 반팔 하나와 반바지 하나 그리고 양말. 여름이라 단출하다. 거품이 나면 손으로 조물조물, 때론 발로 꾹꾹 밟는다. 버튼만 누르면 세탁기 30분, 건조기에 대략 1시간이면 깨끗해질 옷들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운동 후 입은 이 옷들은 ‘내 손’으로 씻어주고 싶었다. 내 땀을 먹은 옷이니, 내 손으로 풀어주는 게 맞는 것 같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기다리는 작은 귀찮음도 손빨래의 이유다.
손빨래(대체로 발빨래 이긴 하지만)는 손수 해야 하는 세탁이다. 내 손과 내 발을 움직여야 한다. 몸으로 직접 움직여야 하는 건 운동도 마찬가지다.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면 편하다. 손 하나 까딱하면 된다. 몸 쓸 일이 없다. 그저 누워있으면 기계가 다 알아서 풀어준다. 운동은 그런 게 없다. 무엇 하나 내 힘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덤벨은 내 손으로 들어 올려야 하고, 트레드밀은 내 발을 움직여 숨이 차도록 달려야 한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감각, 그게 ‘수제’의 힘이다. 손빨래를 하며 나는 이 원초적인 감각을 다시 느낀다. 손끝에 전해지는 내 땀의 흔적, 땀과 때가 빠져나와 사라지는 쾌감. 세탁기 속에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손빨래(발빨래)는 나에게 명확한 ‘작업의 감각’을 남긴다.
마지막은 있는 힘껏 쥐어짠다. 당일 헬스의 마지막 세트는 쥐어짜기에 쓰는 셈이다. 세탁기로 치면 헹굼과 탈수 과정이다, 빨래가 끝나면 물기를 짜서 베란다에 건다. 이 마지막 과정이 좋다.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면 ‘금방 마르겠네’ 하는 안도감이 들고, 흐린 날엔 ‘잘 마를까’ 걱정도 하지만 어떤 날씨든 상관없다. 퇴근하고 돌아와 베란다 문을 열면 뽀송뽀송하게 마른 옷들이 반겨준다.
‘주인님, 내일도 힘내세요. 준비 끝났습니다.’
마치 옷들이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뙤약볕을 받아 뽀송해진 촉감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생각해 보면 요즘은 대부분 버튼에 의존한다. 세탁 버튼, 커피 머신 버튼, 전자레인지 버튼, 키오스크 버튼.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게 자동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할 때만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손빨래의 거품, 연필을 깎는 손놀림, 칼로 야채를 써는 리듬. 이건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손으로 하는 행위는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작은 '느낌'이 있다. 손빨래는 ‘내가 하고 있다’는 실감을 준다. 샤워 직전 후다닥 해치우기에 번거로움이 없다. (옷들이 가볍고 적어서 다행이긴 하다)
‘편리함이 사라지면, 남는 건 온기다.’ 손빨래는 느리지만, 그 속에는 정성이 있다. 뭔가를 직접 한다는 건 나를 삶에 더 가깝게 데려다준다. 대화도 버튼처럼 짧고, 감정도 빠르게 소비된다. 하지만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순간, 내 몸을 '쓴다'는 감각을 느낀다.
손빨래는 거창한 행위가 아니다. 내 손으로 직접 비비고, 헹구고, 짜내는 동안 하루의 리듬이 새롭게 맞춰진다.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 감각, 손끝이 아는 작은 리프레시가 거기에 있다. 뽀송하게 마른 옷을 입고 다음날 다시 운동을 나설 때, 그 사소한 수고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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