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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의 계속되는 미스샷, 침묵이 더 나을까?

-위로와 침묵 사이, 골프장에서 배우는 리액션의 심리학

by 언덕파

'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맞지?'


라운드를 하다 보면 꼭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내’가 아니라 ‘동반자’에게 찾아왔을 때. 동반자 중 한 사람이 유난히 안 맞는 날 말이다.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럽다. 본인은 오죽할까. 모처럼 함께하는 라운드에서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볼은 와이파이로 난사되거나 탑핑 혹은 말도 안 되는 생크가 나는 날. 당사자 역시 짜증을 낼 수도 없고 안절부절못한다. 티샷마다 어이없이 날아가고, 아이언은 뒤땅, 어프로치는 탑핑. 퍼팅도 자꾸 짧다. 골프 샷은 한 번 꼬이면 계속 꼬인다. 도미노처럼 미스샷이 이어진다. 전반 홀이 끝나기도 전에 슬쩍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땀이 맺힌 이마 위로, 짜증·후회·민망함·자기비판 같은 감정이 흘러넘친다. 우린 그걸 알아차리고, 조심스레 고민에 빠진다.

'지금 말을 거는 게 맞을까?'

'그냥 모른 척 지나가는 게 낫나?'

동반자의 계속되는 미스샷에 대한 리액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A타입: 위로하거나 웃음으로 넘긴다

“괜찮아~”, “아까비”, “나무 맞고 내려왔어!” 가볍게 리액션을 건네는 골퍼들이 있다. 말 한마디로 실수의 민망함을 덜어주려는 의도다. 골프가 즐거운 게임이라는 걸, 스코어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다. 분위기 메이커가 있는 경우 유쾌 상쾌 통쾌한 멘트로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선택’이 필요하다. 상대의 성향을 잘 모르거나, 오늘 처음 본 조인 상대라면 자칫 오히려 더 불편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괜찮다고? 그럼 내가 잘 못했단 얘기잖아…” 말이 위로가 되지 못하고 되레 ‘확인사살’처럼 들릴 수도 있다.


B타입: 아무 말 없이 침묵한다

반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골퍼들도 있다. 괜히 말을 걸어봤자 상대에게 더 미안함이나 민망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은 속으로 말한다. “차라리 조용히 있어주는 게 예의일지도 몰라.” 하지만 침묵도 리스크가 있다. 사람에 따라선 무관심처럼 느껴질 수 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라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말하자면, 위로해도 오해, 침묵해도 오해. 리액션은 어렵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결국 중요한 건 ‘나의 마음가짐

골프는 참 심리적인 게임이다. 투어 선수들도 미스샷 하나에 클럽을 던지거나, 인상을 찌푸릴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타이거 우즈는 특히 감정 표현이 강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스샷이 나면 순간적으로 분노를 드러내고, 클럽을 내려치기도 한다. 그런데 타이거의 진짜 강점은 그다음이다. 화를 쏟아낸 뒤, 굉장히 빠르게 잊는다는 것. “그 감정을 오래 끌고 가면, 다음 샷까지 무너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선수다. 그래서 그에겐 멘털 코치가 있고, 자신을 리셋하는 루틴이 있다. 무너진 감정선을 짧게 끊는 능력.

그게 그를 위기에서 다시 정상으로 올려놓는 무기였을 것이다.

우리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지만, 그 ‘심리’의 영향을 똑같이 받는다. 하나의 미스샷이 그날 라운드 전체의 기분을 흔든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옆에 있는 동반자에게도 전해진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실수하든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다. 즐겁고 유쾌한 라운드가 자칫 미스샷 연발로 분위기 싸해져선 곤란하다.


골프를 넘어,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골프장에서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실수한 동료, 프레젠테이션에서 말을 잇지 못한 후배, 작은 실수에 얼굴을 붉히는 친구. 그런 사람을 봤을 때 우리는 똑같이 고민한다.

'말을 걸까? 그냥 두는 게 나을까?'

그럴 때마다 정답은 없지만, 마음은 있다. 말을 건네는 것이든,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든, 따뜻한 시선이 깔려 있다면 어떤 리액션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건 완벽한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순간의 공감일지도 모른다. 잘못 친 샷을 고쳐줄 수는 없다. 하지만 샷 이후의 마음은 어루만져줄 수 있다.


끝으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라운드에서 내가 잘 맞고, 동반자가 고전하고 있을 때 그 동반자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나만 계속 망치고 있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네.' '분위기 망친 건 아닐까.' '기운 빠지게 했나…'

그 순간, 당신이 슬쩍 건넨 한마디. “오늘 운이 별로네. 그래도 같이 걸으니까 좋다.”

이 말이, 이 리액션이 어쩌면 그날 라운드에서 가장 빛나는 샷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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