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보지 못한다
“방금 건 진짜 괜찮았는데 왜 오른쪽으로 갔지?”
스윙 후 몸의 느낌은 분명 좋았다. 손끝까지 완벽한 피니시였고, 균형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볼은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그날의 세 번째 푸시 슬라이스. 볼은 늘 솔직했다. 내가 내 감각을 믿고 있는 동안, 볼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상하다. 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매번 틀리는 걸까.
골프장엔 거울이 없다. 그러니까 나의 스윙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거울도, 카메라도, 리플레이도 없다.
내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오른쪽 어깨가 얼마나 내려갔는지, 백스윙 때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느낌으로만 치고, 느낌으로만 안다. 방금 스윙은 좋았던 것 같아라는 감각만을 믿는다. 하지만 골프는 감각으로 치는 게임이 아니다. 볼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볼이 날아간다. 아주 똑바로 멀리,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곧장 날아가면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다. 그건 내가 나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감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반대일 때, 당황스럽다. 왜 그런지 알 수 있나? 알 수 없다. 나름대로는 잘 쳤다고 느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결국
골프는 내 착각을 교정하는 과정이다. 느낌과 실제 사이의 차이를 좁혀가는 반복.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나를 믿는 만큼, 오히려 틀리게 되는 스포츠다. 정말 아이러니한 게임 아닌가.
거울이 없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나를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의심 위에 '겸손'이라는 태도를 얹어야 한다. 동반자와 라운드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을 본다. 자기는 분명 똑바로 친 것 같다고 말하는데,
볼은 왼쪽으로 휘었다. 아니면 “이런 구질을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라며 혼잣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말을 들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나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
내가 매일 보는 내 얼굴도 실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 생각보다 낯설다. 그렇지 않은가? 매일 아침 거울을 봐도 그렇다. 어제와 오늘 왠지 다른 얼굴 같다. 하물며, 내 스윙은 어떨까. 골프장은 내 착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나는 거울이 없는 곳에서, 내 몸의 움직임을 오로지 감으로만 믿고 휘둘러야 한다. 그리고 결과는? 가차 없다. 골프가 무서운 이유는 ‘기억의 착각’과 ‘감각의 착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코어카드는 숫자를 속이지 않는다. 미스샷은 의도와 상관없이 기록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번엔 좀 달랐던 것 같은데…'라며 자기 최면을 건다. 결국 골프는 나를 바로 보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거울은 없지만, 볼은 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볼의 궤적은 내 심리 상태와 셋업의 흔들림, 습관적인 미스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평소에도 거울을 참 자주 본다. 아침에 눈을 떠서 욕실에서, 출근 전 옷을 입고 나갈 때,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확인한다. 외모나 자세, 피부톤, 옷매무새,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의 기준을 통과해야 비로소 괜찮다고 느낀다. 그런데 골프장에선? 거울이 없다. 그저 몸의 느낌과 바람의 방향과 샷의 감각만 있다. 그리고 샷은 그 순간의 심리, 자만, 불안, 착각, 평정심까지 모두 반영해서 결과를 보여준다.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나를 드러내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감이 좋아요”
레슨을 받을 때 내가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이다. 감이 좋다고 말하면 스윙을 멈추고 교정을 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그 감이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내 느낌대로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 줄 거울은 없다.
결국 레슨 프로의 피드백이 유일한 거울이 된다. 레슨을 받는 이유는 좋은 스킬을 배우는 것도 있지만 내가 볼 수 없는 나를 가장 객관적인 그리고 전문적인 시선으로 봐준다는 것이다. 이 경우엔 레슨 프로가 나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레슨을 받지 않는다면 영상 분석 앱이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흔적들이 있겠지.
결국 골프장에서 진짜 중요한 건 감이 아니라 기록이고, 루틴이고, 피드백이다. 이건 골프만의 일이 아니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자기 인식’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꽤 괜찮고, 꽤 노력하고 있고,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타인이 보는 나는 그와 다를 수 있다. 회사에서의 피드백, 관계 속의 미묘한 거리감, 가족이 느끼는 나의 모습. 그건 내가 상상하는 나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성장이 시작된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디가 흔들렸는지.
어디를 놓쳤는지.
볼은 나의 감정을 모르고,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한 행동 그대로를 되돌려줄 뿐이다.
냉정하고, 솔직하게. 오늘 나를 가장 정확히 보여준 건 캐디도, 동반자도 아닌 내 볼 한 알이다.
거울 대신 볼이 나를 비춘다. 골프장엔 거울은 없다. 다만, 볼이 가끔 그 역할을 대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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