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알래스카에 갔을 때는 일정상 닷새만 머무는 바람에 강렬한 오로라를 놓쳤다. 귀국한 후에도 아쉬움이 남아 알래스카 오로라 상황을 계속 체크했었다. 우리가 알래스카를 떠난 지 사흘 후에 오로라가 제대로 터졌다. 이틀 더 연장하려고 고민하다 확신이 없어 접었는데 그랬다면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뻔했다. 이틀까지는 오로라가 잠잠해서 다행이라 흐뭇해하다 사흘째부터 연달아 폭발하는 오로라를 보며 가슴이 쓰렸었다.
2026년까지는 오로라 극대기가 이어진다. 일단 최극대기인 2025년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그동안 가지 못한 스웨덴, 핀란드의 오로라를 보려 하니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가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2026년 이후에는 서서히 오로라 침체기로 접어드는 데다 점점 자신할 수 없는 건강상태를 감안하면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르웨이 트롬소를 중심으로 3주간 머물기로 하고 오슬로 경유 스칸디나비아 항공편을 예약했다.
오로라를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3주 정도는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제는 숙박비였다. 게다가 차도 필요하니 렌터카 비용까지 합치면 너무 부담스럽다. 차라리 캠퍼밴은 어떨까? 렌탈비는 비싸겠지만 대신 숙박비를 줄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까? J는 나의 캠퍼밴 아이디어에 반색을 하며 열심히 검색에 나섰다. 우리는 오래전 캠퍼밴으로 뉴질랜드 남섬 일주를 한 적이 있다. 알래스카에서도 소형 캠퍼밴을 빌려 다녔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숙박비는 절약될지 몰라도 한겨울에 물과 전기를 공급해야 하고 화장실 처리까지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다. 게다가 가격도 일반 차량 렌트비에 숙박비 합한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별 메리트가 없다. 그래서 결국 포기! 그냥 저렴한 호텔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행을 두 달 앞두고 노르웨이 숙소를 알아봤다. 허걱! 아무 조건도 없이, 평점 무시하고, 공용화장실 쓰는 싸구려 숙소까지 포함하여 검색한 결과 가장 저렴한 방이 105유로, 그다음은 150유로, 그 두 개의 숙소를 제외하면 200-300유로가 보통이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동 예정 경로를 따라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스웨덴, 핀란드 숙소를 찾아봤다. 북극권 지역은 1박 숙박요금 40~50만 원이 기본인 듯하다. 어쨌든 차가 있으니 경로를 더욱 넓게 잡고 구글맵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 이동 시간을 체크하면서 몇 개를 저장해 뒀다. 그나마 핀란드 외딴 시골에 100유로 안팎 숙소가 몇 군데 있을 뿐, 스웨덴에도 별로 없고, 노르웨이 숙박비는 그야말로 깡패 수준이다.
J에게 "스칸디나비아 북부 숙박 요금이 대단하네. 그나마 찾은 게 이거야. 내륙의 깡촌으로만 다녀야겠어"하며 숙소 동선을 표시한 지도를 보여줬다.
그러자 그가 대뜸 하는 말.
"무슨 소리야. 이번에 꼭 로포텐 제도에 가봐야지."
하면서 자기 구글맵을 보여준다. 트롬소 아래 로포텐 제도에 수많은 즐겨찾기 표시가 빼곡하다.
"아니 로포텐 제도는 11년 전에 크루즈 타고 가봤잖아? 허구한 날 비와 눈만 내렸잖아. “
그때는 배를 타고 지난 거고 이번엔 꼭 차를 몰고 가봐야겠단다.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넣어서 오로라를 찍어야 한다면서.
"이보세요. 그때 2주간 노르웨이 해안을 오르내리다 겨우 한 번 간신히 오로라 본 생각 안 나세요? 내륙으로 들어가야 그나마 며칠이라도 맑은 날씨를 만날 확률이 있는 거지. “
인터넷을 검색해서 매일매일의 강수확률이 75%를 상회하는 로포텐 제도의 2월 날씨 표를 J에게 내밀었다.
”그렇군. 그래도 바닷가로 가긴 가야 해. 내륙으로 들어가 봐야 호수가 전부 눈에 덮여 있어 풍경이 똑같을 테니까 맨날 허허벌판의 오로라, 숲 사이의 오로라만 보게 돼. 해안으로 가야 바다에 반사되는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고.“
"바닷가 풍경 물론 좋지. 그렇지만 날씨가 맑아야 오로라를 만날 거 아냐! 평균 강수확률 75%를 10년 전에 겪어보고도 또 거길 가고 싶냐고!“
바닷가를 우겨대는 J와 안전하게 내륙을 주장하는 나는 한참을 싸웠다. 결국 절충점으로 처음 1주일을 로포텐에서, 나머지 일정은 내륙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제 진짜로 숙소를 잡아야 한다. 저렴한 곳으로 찾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나이에 도미토리에 묵을 수는 없다. 결국 서너 군데에서는 공용 욕실을 사용하는 방으로, 나머지도 거의 모텔이나 방갈로 수준으로, 간신히 두어 군데는 좀 멀쩡해 보이는 곳으로 찾았다. 그나마 객실이 단 하나만 남은 곳도 많아 일단 모두 예약. 환불 불가 숙소만 여섯 군데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이렇게 해도 평균 숙박비는 1박당 100유로를 훌쩍 넘어선다.
숙박업소를 우선순위로 하여 최종 결정된 동선.
노르웨이에서는 트롬소에서 로포텐 제도를 거쳐 나르빅까지, 스웨덴은 숙박비가 너무 비싼 데다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에는 숙소가 거의 없어 단 하루 국경마을에서 숙박. 핀란드는 로바니에미와 이나리 부근에서 숙박하고 다시 트롬소로 돌아가는 코스이다. 도대체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비싼 물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세상의 신비 오로라를 찾아가는 여정도 돈에 막히니 운신이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다.
2월이지만 핀란드 북쪽 끝에 있는 이나리 근처는 최저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다. 추운 게 싫어 좀 더 아래쪽으로 가볼까 했지만 J가 위도가 너무 낮으면 안 된다며 올 2025년 1월 미국해양대기청(NOAA) 우주환경센터에서 발표한 Kp지수 중기 예보와 함께 오로라 오벌 지도를 보여줬다. 1월에 지수 7이 하루, 대부분이 2에서 3에 불과하다.
Kp7일 때는 스톡홀름, 오슬로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지만,
Kp2일 때는 훨씬 북쪽의 노르웨이 트롬소, 핀란드 이나리 근방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다.
우리가 11년 전 오로라 극대기에 승선했던 노르웨이 오로라 크루즈를 두 달 전 12월에 똑같은 경로로 갔던 지인이 있다. 다행히 하늘 가득한 오로라를 두세 번이나 보았단다. 위치는? 유럽 대륙 최북단의 함메르페스트 근처란다. 로포텐에서도 하늘이 걷혀주기를, 오로라가 터져주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오로라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11년 주기로 돌아오는 오로라 극대기도 센 주기가 있고 약한 주기가 있다고 한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2002년 오로라 극대기가 매우 셌고 2013년 극대기는 약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는 우리가 장소마다 한 번씩밖에 보지 못했던 거였다.
지금까지 오로라를 쫓아다녀본 경험으론 예보도 참고사항일 뿐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주기는 기대해 볼 만하다는데 결과는 누가 알겠는가.
그저 기원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정에 따라 안전하게 다니며 기다려봐야지.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겸허해지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