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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부가 된 음악에 대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by June H


누군가는 음악을 재미로 듣는다고 한다. 어떤 코드 진행이 쓰였는지, 그것이 어떤 의도로 그 자리에 배치되었는지를 분석하면서, 작곡자의 의도에 가까워질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철저히 창작자의 마인드에서 비롯된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것을 만들기 위해, 타인의 음악을 해체하고 소비하는 방식. 나 역시 글을 쓸 때 비슷한 접근을 했던 적이 있다.


어떤 주제에 꽂혀 글을 쓰려할 때, 아직 아무것도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종종 타인의 글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주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출발한 글은 결국 말 그대로 ‘글을 위한 글’이 되었다. 나에게조차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못하는, 그런 아주 차갑고 메마른 글이 되어버렸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어떤 음악은 나를 스쳐 지나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지만, 어떤 음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아무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무색무취의 음악은 끝내 타인의 음악으로 남지만, 우연히 나의 한 순간과 연결된 음악은 내 안에 깊이 남는다.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된 음악은 살아 있고, 또 살아남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되고, 수없이 재생되며, 그 음악에 담긴 나의 순간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견고해진다. 그렇게 내 일부로 받아들여진 음악은 나의 언어와 문법으로 리메이크된, 새로운 음악이 된다. 구조를 비트는 기술적인 편곡이 아닌,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편곡을 통해 완성된, 나만의 음악이 된다.


어린 시절, 쨍한 여름방학의 어느 날. 에어컨에서 불어오는 인위적이고 이질적인 찬 바람을 쐬며, 게임을 하고 있는 누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 순간이 덧입혀진 음악. 2NE1의〈I Don’t Care⟩. 그 곡이 일으키는 여러 감정 중 핵심은 ‘불안’이었다. 겉으로는 즐거운 한때처럼 보이지만, 어지럽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게임이라는 행위에 대한 학습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분명 좋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 없었던, 그날의 감각이 곡에 스며 있다.


나의 일부가 된 음악들은 대개 그렇게 편곡된다. 마치 사진을 꾹 누르면, 그 순간의 전후 장면이 짧은 동영상처럼 재생되는 라이브 포토처럼. 음악을 재생하면, 그 음악이 나와 연결되었던 순간이 온전히 느껴진다. 그때의 나의 감정, 상태, 느낌, 냄새까지. 짧지만 생생한 기억의 파편이.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된 곡들 중 가장 독특한 곡 하나를 꼽자면, 단연 한스 짐머의〈Time〉이다. 이 곡은 내 삶의 경험이 담긴 음악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에 몰입한 끝에 등장인물들이 겪은 감정을 내가 대리 체험하며 얻게 된 감정이 스며든 곡이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이 곡이 깔리며, 꿈속에서 한 인생을 살고 막 깨어난 두 인물이 조명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을 꾸고, 이제 막 그 꿈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낯섦.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감각. 그 감각에 이끌려, 지금 이 순간이 정말로 현실인지 확인하고자 모든 감각을 집중하는 상태. 익숙한 사물들을 하나하나 지긋이 바라보며, 이어지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문.


지금, 또는 ‘현재’라는 순간 자체에 대한 감정. 한스 짐머의〈Time〉은 그 감정으로 나를 이끈다. 그래서 이 곡은 어떤 의미에서 내게 최고의 명상곡이기도 하다. 이 음악은 내 기억 속 장면은 아니지만, 나를 삶의 본질에 가까운 감정으로 이끈다.





Inception_Ending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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