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기억의 소환을 빌며...
오전 11시쯤 된 것 같다. 바로 위층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엄마! 엄마! 나 ㅇㅇ야. 문 좀 열어 줘요” 반복하여 소리쳐도 안에서 문을 열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를 찾아온 딸은 현관문에 매달려 30분 이상 애원하다 돌아갔는지 조용해진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다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엄마와 딸은 어디론가 외출하는 듯했다. 위층에서는 저런 일이 자주 있다. 때로는 며느리가, 어떤 날은 아들이 찾아와서 문 열어 달라고 고함치기도 한다. 할머니는 주무시거나 안 들려서 그러하기도 하고 가끔은 현관이 어딘지 잊어버려서 문을 못 여시는 것 같기도 하다.
위층 할머니는 치매가 매우 심한데 혼자 사신다. 게다가 귀도 안 좋아 잘 듣지 못하신다. 큰 소리로 말해도 소통에 문제가 많으시다. 가까운 곳에 아들 부부가 살고 있어 수시로 반찬과 먹거리를 준비해 온다고 한다. 엄마와 같은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있어(엄마의 2차 뇌졸중 발병 전의 일이다)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일이 종종 있다. 요양보호사가 실내로 들어가 준비시키고 모셔오는 것 같다. 그렇게 자주 만나건만 엄마와 나를 보면 어디 사느냐, 고 늘 물어보신다. 난청으로 인해 소리도 못 들으시고 사람도 잘 못 알아보고, 때로는 늦잠으로 문을 안 열어 주시니 요양보호사님들의 애로사항도 많은 듯하다. 그래도 요양선생님들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친절하시다. 위층 할머니를 보면 저절로 걱정이 앞선다. 치매가 심한데 혼자 생활하시니 말이다. 아들도, 딸도 있지만 어머니를 모실 상황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 현실을 이해하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안타깝다.
우리 어머니는 치매가 시작된 지 11년째다. 요양원에 계셨는데 모셔온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뇌졸중에 의한 치매였으므로 엄마의 상태도 처음엔 매우 안 좋았다. 설명하자면 1주일은 얘기해야 할 정도로 사연이 구구절절 다양하다. 치매로 발생되는 모든 사례가 엄마에게도 나타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작년부터 많이 좋아지셨다.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쾌차하시니 요즘에는 화장실 못 찾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혼자 밖으로 나가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수발은 한결 수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위층 할머니도 기적처럼 호전되기를 바란다.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안정을 찾으면 기대 이상으로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으니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빨간 튤립 색상처럼 기억이 선명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진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