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연습하다 보면 가끔, 종종, 실수와 실패에 의해서 의도하지 않은 작품이 탄생될 때가 있다. 시작부터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붓을 들지는 않는다. 계획대로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한 점 완성을 위해 가는 길이 평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화지도 내 뜻대로 협조해 주지 않고 아니, 오히려 내가 이해하고 맞추며 따라가야 한다. 붓도 내 편이라고 볼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붓 하나하나의 특성과 성격을 알지 못하겠다. 다루는 솜씨가 부족하니 그래서 또한 실수와 실패가 연발한다. 그렇다면 물감은 내게 우호적인가? 절대 아니다. 색상을 만드는 일도 발색도 내 의중대로 되지 않는다. 세 가지 필수도구를 다독이고 달래면서 목적을 향해 가자니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그 국면에서 탈출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약 올리고 골탕 먹인다. 실수를 수정하다가 의외의 작품이 그려지기도 하고 실수 때문에 새로운 학습을 하기도 한다. 실수도 실패도 결국 스승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예상치 못한 색감으로 인한 착오를 지우다 엉뚱한 배경화면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결과도 나쁘지는 않아서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실수나 우연을 통한 창조성’을 의미한다. 언젠가 책을 읽다가 이 단어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과학적 사례에 대해 알게 됐는데 우연히 발견되고 발명된 위대한 역사적 사건은 매우 많았고, 우연이 아닌 필연을 위해 실수는 그 순간 반드시 발생되어야 할 숙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예술이 되었든, 과학이 되었든, 인간을 구제하는 실수는 다다익선이 아닐까?
내가 소유한 것은 실력도 재능도 아니고 뒤늦게 얻은 열정 하나뿐이다.작품은열정에 의해 죄충우돌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발전하고 성장해 나간다. 그래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