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빵 하나만 주세요.
밴쿠버에 파리 바게트가 생겼다. 집에서 5분 거리에.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파리 바게트 간판이 달리던 날부터 나는 파리 바게트가 언제 오픈할까 손가락을 꼽아 기다렸다. 한국 빵집. 크리스마스날 아빠가 사 왔던 파리 바게트 케이크. 그 파리 바게트가 밴쿠버에 문을 연다. 한국에 대한 기억. 아빠에 대한 기억. 좋았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던 한국 빵집이 밴쿠버에 문을 연다.
2024년 12월 21일.
드디어 밴쿠버에 파리 바게트가 오픈을 했다. 4살짜리 꼬마와 서둘러 집을 나선다. 혹시 줄이 길게 서 있으면 어떡하지? 설레는 마음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혹시라도 매장 안이 붐빌까 유모차는 가져오지 않았다. 꼬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발걸음이 바빠진다. 매장 안은 빵을 고르는 사람. 빵을 먹는 사람. 빵을 만드는 사람.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먹고 싶은 거 고르자. 엄마도 고를게."
"아무거나?"
"응, 아무거나 다 사줄게."
"그럼. 나 케이크."
"그래 우리 케이크 사서 아빠랑 같이 먹자."
꼬마와 함께 케이크가 진열된 곳으로 간다. 연말이고 작은 딸기 케이크를 하나 사서 우리 가족끼리 둘러앉아 먹고 싶었다. 어떤 케이크를 살까 가격표를 보는데.... 오 마이 갓. 잠깐만요.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딸기 케이크의 가격이 예사롭지 않다. 잠깐만요? $62.99? 네에? 설마... 혹시 하고 다른 케이크의 가격도 살핀다. 다른 건 더 비싸다. 어떤 건 한국돈 7만 원에 육박하는 케이크도 있다.
"아, 미안. 우리 케이크 말고 다른 거 먹자. 생각해 보니까 아빠가 케이크를 싫어하잖아." 꺼내놓은 변명이 궁색하다. 자린고비 엄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꼬마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휴우~ 알았어."
6만 원짜리 딸기 케이크를 포기한다. 꼬마는 딸기 치즈 빵. 나는 단팥빵. 그리고 남편 줄 소시지빵을 골랐다. 3개의 빵을 고르고 $15불. 한국돈 만 오천 원 정도를 냈다. "케이크가 칠만 원 돈 해." 집에 오는 길에 파리 바게트를 궁금해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엥? 7만 원 그건 아니지. 7만 원 주고 파리 바게트 케이크를 사 먹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 우리도 먹고 가자." 꼬마가 의자에 앉아 말한다.
"그래." 빵을 먹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도 빵을 뜯는다. 꼬마가 고른 딸기 치즈빵은 포장을 뜯자마자 인공 딸기 향이 훅 끼친다. 미안해진다. 딸기 케이크에 튼실하게 박혀있던 딸기가 생각났다. "한국 가면 케이크 2개 사줄게. 초코 묻은 거랑 딸기 크림 알았지? 한국에는 더 맛있는 게 많잖아." 꼬마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빠가 사 왔던 케이크. 가족들과 밥상을 펴고 케이크를 먹었던 그날의 기억. 케이크 덕분에 행복했던 겨울밤의 기억. 꼬마와 파리 바게트에서 빵을 먹으며 지난날을 추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