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 부자엄마 Dec 13. 2024

삼겹살이 뭐길래?

그놈의 삼겹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영구임대주택에 산다는 게. 단점이 되고 약점이 되던 날들. 나는 돈이 참 많았으면 했거든. 내가 돈이 많으면, 우리 집이 영구임대주택에 살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일들.


2007년, 우리 할머니 나이 80이 넘었다. 영구임대주택 가까이에 이마트가 있었다. 할머니는 이마트 시식으로 배를 채웠다고 좋아했다. 어떤 날은 돼지고기도 먹고 어떤 날은 소고기도 공짜로 먹었다고 할머니는 4살짜리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쓰레기들을 모았다. 놔두면 쓸모 있을 거라 하나둘 집으로 가져온 건데 쓸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는 쓰레기 말고도 음식도 모았다. 냉장고 안에는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들로 둘둘 싸매진 것들이 문을 열 때마다 하나고 둘이고 툭하고 내 발등으로 떨어졌다.  


할머니랑 나랑 영구임대주택에 살던 날. 고모가 조카를 데리고 놀러 왔다. 나는 내 작은 방에 있었다. 할머니와 우리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엄마욕을 하고 엄마는 할머니욕을 했다. 고모는 그게 달갑지 않았을 거다. 고모 식구들과 할머니가 거실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17평 작은 영구임대주택 안에 삼겹살 냄새가 퍼졌다. 아무도 방에 있는 나에게 삼겹살을 먹으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고모는 삼겹살을 씹고 엄마도 씹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 삼겹살 구울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 


내가 살던 시골동네에 개장수가 온날이 있었다. 우리 집 개가 그때 개장수를 쳐다보는 눈빛. 그리고 꼬리를 다리사이로 말아 넣고 질질 오줌을 쌌던 날. 나는 누구라도 내가 전에 영구임대주택에 살았던걸 알아챌까. 늘 불안했다. 개장수 앞 개처럼. 늘 불안했다. 무서웠고.


영구임대주택에 산다고 다 불행한 건 아니다.

가난해도 다 불행한 것 아니듯이.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가난했다. 불행했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했다. 삼겹살을 먹으라고 하지 않은 할머니를 그리고 고모를 나는 오래 미워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일 년이고 오 년이고 십 년을 원망했다. 내가 그랬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누군가의 불행을 기도하는 게 결국에는 나를 망가트리고 파괴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깟 삼겹살 내가 사줄걸. 


할머니. 

할머니.


가난해서 좋았던 건. 사람 말고 가난만 원망하면 되니까. 나는 할머니와 고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꽤 된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