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몸매가 망가지면서 나는 살이 부쩍 늘었다. 어느새 거울을 거의 보지 않게 되었던 시절이었다. 첫째 아이를 낳으며 알게 된 분이 있었다. 우리 또래의 부부였고 그녀는 연상이었다. 돌도 안된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나오면서도 뽀얗게 화장을 하고, 뾰쪽 구두를 신고, 손에는 늘 매니큐어가 정성스럽게 발라져 있었다. 마트에 갈 때조차 정성스럽게 단장하고 나서는 그녀에게 어느 날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예쁘게 하고 다녀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여자도 화초처럼 매일 가꾸어야 해. 나는 연상이라 더 노력해야 사랑받거든.’ 이 말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줬다. 나를 방치하며 초라해지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예쁜 데이지 원피스를 작년 여름에 사두고 특별한 날 입으려고 나 두었다가 결국 한 번도 못 입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매일 거울을 보고 나를 가꾼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나의 자존감을 챙기는 일이다. 요즘은 집에 나설 때면 예쁜 옷을 입고, 곱게 단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며 매일 나를 보며 예쁘다 칭찬을 한다. 특별한 날 예쁘게 단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으니까 미리 단장하는거지!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도 옷을 좋아했다. 월급을 받으면 한 달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좋아하는 옷과 신발을 사고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돋보이게 한껏 꾸미는 것을 좋아했었던 나였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싶었다.
모든 순간이 특별한 나의 하루를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새긴 문장이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며 곱씹고 싶은 말이라 나에게도 잘 보이는 쇄골 쪽에 새겨 넣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식으로 말이다.
두 번째 타투. Amorfati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다. 나의 운명을 사랑하자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김연자선생님의 아모르파티의 노래 가사도 너무 좋다.
내 뜻과 다르게 인생이 흘러가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선택을 마주할 때마다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상황이 힘들어도 내 잘못이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인생의 시간을 그동안 헛으로 보내며 나이만 먹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나를 사랑하지 않은 시간들이 너무 아쉬웠다. 비록 내 운명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나 자신만큼은 나를 사랑하고 아끼겠다고 결심했다.
반팔을 입으면 살짝 보이는 왼쪽 팔뚝 뒤쪽에 새겨 넣었다. 내가 나를 안아줄 때 오른손 끝으로 글씨가 잡힐 수 있게 말이다. 위로가 필요한 날 나를 안아주고 다독이며 속삭인다.
"인생 뭐 있어! 즐겁게 사는 거지!! Amorfati!"
세 번째 타투. 사랑하고 사랑받자
피어난 장미와, 튤립이다. 장미는 사랑과 열정을 의미하고, 튤립은 사랑의 고백, 배려를 의미한다.
우울한 사람은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봄의 따스함, 여름의 뜨거움, 가을의 선선함, 겨울의 차가움을... 나 역시 한동안 그런 계절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꽃향기가 나는 향수를 선물했다. 어느 힘든 날 차에 털썩 앉았을 때 본인몸에 나는 향수냄새가 올라와, 위로를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매일 향수를 꼭 뿌린다고 했다. 순간 향기로운 냄새에 나는 그래도 보잘것없지 않고 향기 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향기로운 향수를 보내주었다. 솔직히 나는 코가 예민해서 조금만 독해도 코가 아파 향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느낌 탓이었을까? 은은하게 나는 그 향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꽃향기가 나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렸다. 희한하게 그 해에 향수를 6개나 선물을 받았다. 주변을 보니 나의 만족을 위해 향수를 뿌리는 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
향수 때문이었을까 나의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고,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도 어여쁘고, 세상이 밝게 빛나며 향기 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 옆에서 나도 나를 매일 웃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덕분에 힘든 일조차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에 좌절했었고, 앞으로는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설레는 사랑이 눈앞에 있었다. 나도 다시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구나 생각에 심경이 자꾸 변하면서 나에게 다짐처럼 다가왔던 타투다.
앞으로는 좀 더 성숙한 마음으로 사랑하겠다는 의미로, 어깨동무를 하면 감싸 안을 수 있도록 오른쪽 어깨 뒤쪽으로 새겨 넣었다.
네 번째 타투. 가족
등뒤에 세계지도, 무한대, 나침판, 비행기, www 등이 생겨져 있는 타투다. 나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어떤 내용을 넣을까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하고 만든 그림이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지만,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 주고, 지탱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어떤 타투로 새길까 고민했었다.
무한대 기호는 가족을 향한 내 변함없는 사랑을, 나침반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아이들의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나의 다짐을 상징한다.
www는 나를 포함해 아이들의 이름 가운데가 원(w)이 들어가 아이들을 의미하고,
비행기는 나의 꿈 세계여행을 의미하면서, 꼭 꿈을 이루겠다는 결연의 의미이다.
세계지도는 어디에 있든, 함께 살지 않더라도 우리 가족이 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지막으로 그림으로 들어가 있지 않지만 타투를 새겨 넣은 위치는 늘 등뒤에서 지켜주는 엄마가 계셔서 든든하다는 의미로 등뒤에 새겼다.
다섯 번째 타투. 매화
최근에 새겨 넣은 하쿠나마타타 위에 피어난 매화이다. 유일하게 색이 입혀져 있는 타투이다.
20, 30대는 늘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했다면 40대는 없을 것만 같았던 나의 나이다. 40대에 나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며 지금까지 나는 많이 자라고 성장했다. 누군가 20대로 돌아가겠냐고 한다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했고, 기대되는 50대를 맞이하고 싶었다. 50대의 나를 상상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 아가야 할까 고민했다.
매화가 눈에 들어왔다.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며, 추운 겨울을 뚫고 봄을 알리는 꽃이다. 험한 계절 속에서도 자신을 피워내는 모습이 매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나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결국 좌절하지 않았고, 꽃을 피운다는 의미로 삼고 싶었다. ‘매불매향'이라는 말처럼, 매화는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꽃이라면 향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는 자신만의 지조와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상징이다
나의 50대는 지조 있고, 우하하며, 풍성하길 바라며, 꽃 피우는 50대로 걸어가자는 의미로 왼쪽 발목에 새겨 넣었다.
타투를 하고 확실한 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다시 한번 마음의 각오를 되새기게 된다.
나의 선택은 후회가 없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무언가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선택이 실패한다면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는 과정안에서 나는 중심이 생기고 소신이 생기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다져진 내 결심은 누구도 흔들 수 없음을 나는 안다. 나의 타투가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살아가기 위한 몸무림 중 한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