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구녕 이효범
그럴 리가 없지.
농담으로 6을 뒤집어 놓은 것이 아닐까.
한 일은 없고
할 일은 많은데
친절해진 햇살은 땀을 닦고
익은 과일을 따라고 명령하네.
가슴에 품고 가던 따뜻한 국물을
돌부리에 걸려 쏟은 사람처럼
나는 가난하게 노래하네.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고
지혜는 언제나 늦게 찾아온다고.
창밖의 풀벌레 소리야
가을은 너무나 짧다.
후기:
지난여름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태풍이 몰고 오는 엄청난 비나 논밭이 짝짝 갈라지는 가뭄 같은 자연의 재앙을 당한 후에는 역병이라는 전염병이 돌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이런 자연적인 도전에 지속적으로 잘 응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에 보지 못한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전 지구를 무섭게 휩쓸고 있고,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는 천기도 불순하여 긴 장마와 연속적인 태풍으로 사람들을 계속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가슴을 조이며 세월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에도 어김없이 계절은 순행하여 9월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높이 파래지고 바람도 서늘해졌습니다. 또 극성스러운 모기는 한 순간 사라지고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곳은 갈 수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한없이 답답하지만 계절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아직도 외국으로 가는 하늘 길은 굳건히 닫혀 있습니다. 흩어지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이 우울의 세계로 향하는 나를 막아줄까요. 가을은 남자의 계절입니다. 따뜻한 봄바람은 여자의 치맛자락을 밀어 올리지만, 떨어지는 낙엽은 남자를 멜랑꼴리(melancholy)하게 만듭니다. 그런 가을날은 호랑이 같은 아내 몰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존재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이 허무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유행가처럼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불쌍한 나를 받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