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매치기
다낭에서 첫 휴가를 보내고 다시 하노이.
2022년 5월. 아직 코로나 시국이라 출입국이 힘들다. 비행편도 여의치 않고(당시 부산 출발 하노이행 비행기가 중단되어 있었다) 출입국을 위해 코로나 예방접종 확인서뿐 아니라 24시간 이내 코로나 음성확인서 제출이 필수였다.
남편은 인천 공항으로 가서 하노이에 오는 2박 3일의 짧은 여정으로 오게 된다. 저가 항공 요금도 백만 원이 넘던 때다. 울산에서 인천 공항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렇게라도 아이와 나를 보러 오는 그 마음도 참…... 애초에 하노이 근무를 희망할 때는 남편의 휴직과 동반 입국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결국 남편은 휴직을 할 수 없었고(중소기업사원의 비애다)나 혼자 아이와 하노이에 오게 되었다. 물론 그때는 내가 혼자는 못 갈 거라는 안일한 생각과 말릴 수 없을 거라는 자포자기 중간쯤에서 남편은 나를 놔두었던 것 같다.
남편은 금요일 오전에 와서 일요일 밤에 가는 일정이었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공항으로 기사를 보내고 집으로 픽업을 부탁했다.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가니 아파트 로비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격의 상봉을 하고 집으로 올라가 짐을 놓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집에서 아이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라 더운 날씨에도 걸어가 보기로 한다.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운동장에서 아빠를 발견한 아이가 가방을 덜컹이며 뛰어온다. 아빠에게 안기는 딸의 모습이 뭉클하다.
나는 20대 때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돈을 모아서도 가고, 금반지를 팔아서도 가고, 대출을 받아서도 갔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휴가를 활용해 짧게도, 길게도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남편은 그럴 수가 없었다. 중소기업 사원인 남편은 기껏해야 추석, 설 연휴와 여름휴가가 다였고 그마저 4-5일이 채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남편과 함께 간 곳은 사이판, 홍콩(그것도 남편 혼자 먼저 귀국하고 나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여행했다), 그리고 오사카가 전부다. 물론 바빠도 주말은 항상 가족과 보냈고 특히 아이들을 위해 매주 다양하고 신박한 계획을 세우는 남편이었기에 국내에서는 안 가본 도가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그렇게 남편은 첫 베트남, 첫 하노이에 발을 딛게 된다. 아이와 상봉하고 나는 우선 남편에게 하노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셋이 그랩을 타고 일단 호안끼엠으로 가서 여행자 모드로 다녀보기로 한다.
분짜를 먹고 호안끼엠 호수까지 걸어갔다. 문제는 그때였다. 호안끼엠 호수에서 남편은 크로스백을 앞으로 메고 다녔는데 딸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으려고 잠시 가방을 뒤로 돌려맸다. 사진을 찍고 걸어가던 중 남편이 급히 앞서가던 나를 불렀다. “지갑이 없어졌어!” 장난인 줄 알았다. 베트남 아니 더 치안이 안 좋은 나라들을 수없이 다녔어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은 없었다. 그리스에서 같이 간 일행들이 돈과 휴대폰을 털렸을 때도 나는 괜찮았다. 평소에도 그냥 에코백에 이것저것 넣고 잘만 다녔는데 웬 날벼락인지. 남편의 지갑에는 달러와 한화, 신용카드, 신분증, 각종 멤버십 카드가 들어있었다. 여권도 가방에 들어있었는데 다행히 여권은 가져가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일단 광장 옆 콩카페로 들어가 수습을 했다. 신용카드를 막으려고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분실신고를 했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괜찮다며 애써 진정시켜주는 남편이 안 됐다. 3개월 만에 만나 그것도 3일밖에 못 있는데 슬퍼하거나 짜증을 내기엔 각자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맥주거리와 야시장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하노이 도착 세 시간 남짓 된 상황에 소매치기의 피해자가 된 남편. 그게 남편의 하노이였다.
다음날은 서호로 가본다.
꽃정원은 내가 처음 서호에 갔을 때 찾은 보물 같은 곳이다. 입장료는 없고 음료나 음식을 시키면 제한 시간 없이 있을 수 있다. 꽃밭이 잘 가꾸어져 있고 인디언 텐트와 빈백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아이와 남편은 재미있게 놀았다. 짧은 일정이라 어딜 가는 것은 힘들고 같이 보내는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내기로 한다.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남편은 하노이 와서 장 보고 고기 굽고 설거지했다. 일요일 아침엔 짜파게티를 끓였고 아이와 뒹굴거려 주었다.
출국을 앞두고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일요일이라 병원 일정이 안 맞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늦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결국 홍옥 병원 응급실로 가 코로나 검사를 했다. 저녁에 결과가 나온다 해서 그랩을 불러 병원에 갔는데 비가 온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니 집으로 가는 그랩이 안 잡힌다. 우왕좌왕하는 나를 남편이 안쓰럽게 바라본다. 겨우 택시를 잡아 탔는데 미딩 경기장 쪽에 행사가 있는지 길이 막혔다. 통제를 하는 것 같다. 기사는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내리란다. 남편의 출국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걱정이다. 그래서 무조건 집으로 가달라고 했다. 겨우겨우 집으로 왔다.
그랩 부르고 식당 찾고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 다음부턴 내가 그랩 깔고 내가 검색해야겠네.‘
어설프고 가여워 보였나 보다. 나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그렇게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재우고 남편은 일요일 밤 10시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남편을 배웅하고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결국 오열을 했다. 이게 뭐지??
한국에 도착한 남편은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중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너랑 애를 그런 곳에 두고 오다니 이게 말이 되냐?‘
……
나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