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출근길 버스에서 수화는 지혜를 만났다. 수화는 반갑게 인사했다. 지혜는 기계적으로 인사하고는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버스에 내려 사무실로 가는 길에도 별다른 말 없이 각자 길을 걸었다. 수화는 지난주 금요일 그렇게 헤어진 것이 마음에 걸려 지혜에게 선뜻 말을 건네지 못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수화는 가방을 내려두고 커피를 사러 카페로 향했다. 여전히 이과장에게서 업무 메시지가 오고 있었다. 수화는 외면한 채 커피를 사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이과장에게 답장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그때 지혜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영업팀 사무실에 충전기와 여분의 약품이 있냐는 것이었다. 수화는 있다며 지금 사무실에 아무도 없으니 겸사겸사 놀러 오라고 얘기했다. 지혜는 지루한 틈에 물건도 빌릴 겸 영업팀 사무실로 향했다.
지혜가 영업팀 사무실로 갔을 때는 영입팀 직원이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이라 수화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화에게 밴드와 약품 몇 가지를 받아 들었다. 지혜가 사무실을 나서려고 하자 수화가 건물 밖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따라나섰다. 지혜는 혼자 오가기에 심심하던 터라 수화가 따라나서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해방촌에서 잘 놀았어요?"
수화는 웃으며 살짝 끄덕였다.
"해방촌 어디 갔었어요?"
"해방촌에서 놀다가 이태원 갔어요."
"이태원에 ㅇㅇㅇ갔는데 엄청 핫하더라고요."
"아~ 거기 갔구나"
"볼래요?"
수화는 이태원에서 친구들과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수화와 친구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들썩이고 있는 영상이었다. 지혜는 그 영상을 보고 수화가 회사에서 보기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이 있구나.
"와"
"수화씨, 'I'라더니"
"안녕하세요."
지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영업팀 팀장이 관리팀 사무실에 들렀다. 관리팀 팀장과 할 얘기가 있어 잠시 들린 듯했다. 정윤의 자리에서 문이 바로 보이는 터라 정윤이 영업팀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어~ 오랜만이야 정윤씨"
"네"
정윤의 책상 파티션에 팔을 기대고 영업팀 팀장이 말을 이었다.
"정윤씨, 수화씨한테 출근 시간 좀 얘기해봐."
"제가요?"
"그래, 지혜씨랑 셋이 친하다며"
"그건 팀장님이 얘기하셔야죠.."
"얘기했는데 왜 자기만 늦게 출근해야하녜. 관리팀 다 일찍 출근한다고"
"아.. 네.."
영업팀 팀장은 관리팀 팀장이 불러 회의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남은 정윤은 자신한테까지 책임이 지워지는 거 같아 찝찝했다. 거절한 수화 탓이라기보다 팀원을 관리하지 못하는 상사들의 어리숙함이 문제라고 여겼다. 뒤에서 말이 도는데 누구 하나 단호하게 말을 하지 못하다니. 영업팀 팀장은 회의가 끝나고 다시 관리팀 사무실에 들러 정윤에게 지나가는 말로 언질했다. '업무 시간이 안 맞아 불편해.'
정윤은 마침 사무실로 들어온 이과장에게 영업팀 팀장이 다녀간 사실을 전하며 수화의 출퇴근 시간에 불만이 있으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윤이 관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전했고 이과장은 팀장님과 얘기하겠다며 대화를 마쳤다.
점심시간이 되어 지혜, 수화, 이과장, 정윤이 식당으로 향했다. 수화는 자연스럽게 지혜를 당겼고, 식당에서 카페에서도 지혜의 옆자리만 고수했다. 눈치챈 지혜가 먼저 정윤의 옆 자리로 앉기도 했다.
"정윤씨는 주말에 내 친구랑 정윤씨 동네에 왔다고 나오라고 하면 나올 거예요?
"우리 동네에?"
"네, 정윤씨 동네에! 내 친구랑 같이 있는데 놀자고 하는 거지."
"놀고 싶으면 나갈 거 같은데..? 글쎄"
"봤죠?!"
지혜는 수화에게 눈짓하며 무언가 의도를 전한 듯했다. 수화는 그런 지혜를 보며 빈정이 상했다. 지혜가 친구들이랑 놀자고 할 때면 수화가 정윤의 핑계를 대며 정윤씨도 거절할 것이라는 얘기를 했었고, 시험하듯 수화가 보는 앞에서 정윤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지혜는 정윤의 옆에 서 걸었고, 수화는 혼자 떨어져 걸으며 영업팀 사무실로 돌아갔다.
수화는 퇴근길, 역시나 지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윤은 지혜와 얘기에 집중하느라 수화를 발견하지 못했고 지혜가 수화를 부르자 옆을 돌아보았다.
"수화씨!"
"어, 수화씨? 아직 안 갔네요"
조금 늦게 퇴근한 정윤은 수화가 기다리는 것 같아 의아하게 물었다. 이제 수화와 사적인 메시지는 주고받지 않는 터라 수화가 기다리고 있는 이유가 지혜일 것이라 추측했다. 게다가 지혜가 수화와 술을 마신 이야기를 했던 터라 퇴근길이 같은 둘이 종종 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윤은 지혜, 수화와 인사 후 집으로 향했다.
"오늘 놀다 갈래요?"
"네?"
"제가 지혜씨네 동네 근처로 갈게요!"
"우리 동네요?"
"네! 가요. 가요."
점심시간에 있었던 지혜의 질문과 행동이 마음에 남아 수화는 시간을 내었다. 지혜는 심심하던 차라 동네까지 온다는 수화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고 지혜가 자주 가던 호프집으로 향했다.
수화는 회포를 풀 듯 헤어진 남자친구가 짐을 가져간 얘기와 외롭다는 얘기를 이어하자 지혜는 수화가 알만한 남자인 지인 이야기를 했다. 그 남자와 수화가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고향이 같아 만난 오다가다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다.
"걔 부를까? 부르면 올 텐데"
"불러요!"
수화는 같이 놀고 싶다며 동조했고 지혜는 그 남자를 불렀다. 한 시간여만에 도착한 그 남자는 수화와 공통분모가 있어 금방 어우러졌다. 셋은 자리를 옮겨 2차까지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를 기다리며 수화는 한껏 취해 가기 싫다며 주정을 부렸고, 지혜가 수화를 겨우 붙잡아 택시에 태웠다.
전 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간 수화는 오전에 휴가를 사용했다. 이과장 역시 휴가를 사용한 날이라 지혜와 정윤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정윤은 수화가 동네까지 온다고 해서 남자인 지인을 불러 논 얘기와 수화가 매번 자신이 병원 가는데 데려다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화가 꽤나 지혜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거 같아 점심시간 때마다 지혜를 당기거나 옆 자리를 고수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랬구나? 정윤의 말에 지혜가 물었고 정윤은 그간 본 수화의 행동에 대해 얘기했다. 지혜는 정윤의 말에 수화의 행동을 되뇌며 그녀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가 되어 수화가 출근했고, 속이 좋지 않아 사무실에서 연신 물만 마셨다. 어제 지혜가 소개해줬던 남자와는 이성적인 감정이 들지 않아 그냥 지인으로 두어야겠다 생각했다. 가끔 어울려 놀기에는 적당한 인맥이라 판단했다.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간 지혜는 대표의 심부름 겸 외출하였다가 영업팀 사무실로 향했다. 지루했던 수화가 사무실로 놀러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혜씨!"
수화는 반갑게 그녀를 불렀다. 지혜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수화에게 자기의 팔을 당긴다거나 자신의 옆자리에만 앉는 이유를 물었다.
"소외감 들어요.."
"..?"
지혜는 수화가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은 질문에 수화의 다른 답이 돌아왔다.
"저만 멀리서 따로 걷고.."
"이과장님이나 정윤씨, 저한테 관심도 없어요."
"네?"
"저는 그냥.."
'회사에서 왕따처럼 보이기 싫어요.'
"..."
수화가 아낀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지혜는 수화가 안쓰러웠다. 알만한 얘기였다. 지혜도 비슷한 사회생활 경험이 있기에 그녀가 느끼는 소외감을 이해했다. 다만 지혜가 수화의 질투에서 시작한 복수심까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갈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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