巧拙賢愚相是非(교졸현우상시비)
잘났네 못났네 따지지들 말고
何如一醉盡忘機(하여일취진망기)
한 잔 술에 세상사 잊어보면 어떠리
君知天地中寬窄(군지천지중관착)
아시겠소 천지 중에도 넓고 좁은 곳이 있고
鵰鶚鸞凰各自飛(조악난황각자비)
모습 다른 새들도 저 편한 대로 날고 있음을
對酒(대주) / 백거이
질곡에 빠진 백성들의 지난한 삶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다. 예나 지금이나 술 권하는 사회 때문에 백성들이 취하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중독된 자’와 ‘중독되지 않은 자’라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독이란 ‘poisoning’이 아니라 ‘addiction’을 일컫는다. poisoning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해 생체가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현상이며, addiction은 술이나 도박 등에 빠져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addiction의 어원은 라틴어 ‘addicene’으로서, ‘양도하거나 굴복하는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잡혀서 감금된 노예나 주인에게 넘겨진 사람을 고대 로마 법정에서는 ‘중독자’라고 했다. 노예의 경우 어떤 사물에 대한 소유권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중독의 특징이 숨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적을 위해 수단의 하나로 선택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되어서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이 중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굳이 poisoning과 addiction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중독(中毒)’이라고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마약이나 도박 등에 중독(addiction)되면 그것이 결국 독약처럼 생체에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중독(poisoning)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독약인 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이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 니코틴 등에 중독되는 것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다. 뇌의 변연계에는 쾌락과 충동을 조절하는 부분인 ‘뇌 보상체계’가 존재한다. 뇌신경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되는 메커니즘도 도파민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 보상체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한 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파멸로 치닫는 중독이 아니라 아름다운 중독도 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봉사 활동’이 바로 그것. 러너스 하이란 달리기를 시작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마약을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상태와 비슷한 행복감에 빠져드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힘든 달리기 등의 운동에 중독되기도 한다.
봉사 활동에 중독되는 사람들도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을 방문하며 봉사 활동을 한 배우 김현주는 “나눔과 봉사가 어떤 것보다 중독성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또 국세청이 선정하는 ‘아름다운 납세자 상’을 수상한 김재하 대영베어링 회장은 “기쁨에 중독되어 봉사를 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능적인 욕구의 충족’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는 두 가지 바람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역설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중독이야말로 거기에 정말 부합되는 조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