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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규 Nov 10. 2024

치명적인 ‘외로움’

寂寂虛堂白晝長(적적허당백주장) 

쓸쓸한 빈 집에 낮은 길어

乾坤一片黑甛鄕(건곤일편흑첨향) 

천지는 한 조각 꿈이로구나 

數聲啼鳥南風細(수성제조남풍세) 

두어 가락 새소리 들리고 남풍 부드러운데

身世悠然墮渺茫(신세유연타묘망) 

여유로운 내 신세 아득하여라


獨坐(독좌) / 이색


이색은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한 사람으로서 신진사대부의 리더였다. 조선 건국에 기여한 정도전과 끝까지 충절을 지킨 정몽주 모두 그의 제자였다. 유배지를 떠돌던 그는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벼슬을 하사했으나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외로움이 절절이 배여 있는 시다.


예전에 생명과학 분야의 권위지인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매우 흥미로운 연구보고서 한 편이 게재됐다. 박테리아도 외로움을 싫어해 혼자 고립될 경우 화학 폭탄을 마구 뿜어낸다는 내용이다.


평소 박테리아는 자신들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의 농도를 통해 주변에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있는지 인식하며 그들과 소통한다. 그런데 연구진이 나노기술로 유리 독방을 만들어 단 하나의 황색포도상구균만을 가둔 것. 그러자 그 황색포도상구균은 곧 주변 박테리아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리소좀’이란 화학 폭탄을 뿜어대는 행동을 계속했다.


이 연구결과는 단 하나의 박테리아가 어떻게 심한 감염을 일으키며, 단 하나의 암세포가 어떻게 치명적인 종양으로 전이될 수 있는지를 알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외로움은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중년 이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혈압이 30이나 높다는 보고가 있으며, 독감 백신을 맞았을 때도 항체 반응이 16% 정도 낮게 나타난다고 한다. 즉, 외로움이 인체의 면역 반응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다.


실제로 외로움이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지를 알려주는 다른 연구결과들도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노인연구소에서는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에 2배 이상 걸리기 쉽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친구가 없는 것보다는 본인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는 것이 치매 발명의 위험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그런데 영국 런던대의 연구결과는 이와는 약간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2004년부터 52세 이상 영국 성인 6천500명을 대상으로 7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외로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26%나 더 높았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의 외로움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연결고리가 없는지를 나타내는 사회적 고립 정도를 나타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실험대상자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사망률 비교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 고립 정도와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은 분명 별개다. 어떤 이는 주위와 고립된 채 지내는 데도 외로움을 타지 않는 반면, 사회적 접촉이 많음에도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두 경우 모두 노년의 건강에 해가 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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