庭際無人葉滿蹊(정제무인엽만혜)
뜰에는 아무도 없고 길가 낙엽 가득한데
草堂秋色轉凄凄(초당추색전처처)
초가집에 가을빛만 쓸쓸하네
蛩如有意跳相咽(공여유의도상인)
메뚜기도 마음이 있는지 흐느끼듯 날뛰고
山似多情翠又低(산사다정취우저)
산들도 정이 있는 듯 푸르름이 낮아지네
秋日(추일) 중에서 / 김시습
메뚜기는 산의 옛말인 ‘뫼’에서 뛰어노는 곤충이라는 의미에서 탄생한 순우리말이다. 이 작은 곤충에게도 마음이 있어 가을밤의 정취에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거나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 연구진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초원에 두 개의 우리를 설치한 뒤 한 곳에는 메뚜기만을, 그리고 다른 우리에는 메뚜기와 그들의 포식자인 거미(입을 봉한 상태)를 함께 집어넣었다. 이렇게 기른 메뚜기들이 수명을 다해 죽자 그 사체를 각기 따로 모은 후 낙엽과 함께 땅에 뿌렸다.
그로부터 90여 일이 지난 후 살펴본 결과 거미와 함께 산 메뚜기의 사체에 뿌려진 낙엽은 그렇지 않은 메뚜기의 것에 비해 훨씬 덜 썩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이 그런 결과를 낳을 것일까?
범인은 바로 거미와 함께 살면서 표출된 메뚜기의 스트레스였다. 포식동물의 위협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대부분의 동물들은 몸의 구조를 이루는 질소보다 몸의 에너지 출력을 신속히 높일 수 있는 고탄수화물 먹이를 우선 섭취하게 된다. 질소는 유기물 분해 효소 생성에 필요한 성분인데, 이것이 부족하니 낙엽이 잘 썩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심혈관계 질환과 치매를 유발하며, 당뇨․피부질환․면역체계를 비롯해 정신 관련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의 메뚜기 실험은 스트레스가 사후 토양의 미생물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위의 실험과 비슷한 사례로 ‘메기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미꾸라지가 사는 곳에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훨씬 활기차게 움직이고 번식을 많이 해서 조직 전체가 건강해진다는 것.
도덕경을 보면 ‘귀생사지(貴生死地)’라는 말이 나온다. 몸은 귀하게 여길수록 더욱 나빠진다는 뜻이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때문에 적절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삶을 건강하게 해준다고들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진은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쥐를 대상으로 약한 전기자극을 주는 스트레스 실험을 한 결과, 스트레스를 받은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기억을 조절하는 해마의 뇌세포를 2배 이상 많이 생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실제 기억력 테스트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2주 뒤에도 특정 행동에 반응할 만큼 기억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과연 스트레스는 독일까, 약일까. 적절한 스트레스가 약이 된다면 그 적절함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스트레스를 적으로 대하는가, 아니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대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