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좌우하는 10개월

by 이성규

婦乳女兒夫食子(부유여아부식자)

어미는 젖 물리고 아비는 밥 먹이고

就陰閒坐淸溪水(취음한좌청계수)

맑은 냇가 그늘에서 한가로이 쉬네

終朝耕盡上平田(종조경진상평전)

아침에 밭갈이를 다 끝내고

且放牛眠芳草裏(차방우면방초리)

소는 풀밭에서 졸고 있네


田家行(전가행) / 임준


부모가 자식들에게 젖을 주고 밥을 먹이는 풍경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처럼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기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유지된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무렵인 1944년 9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독일군은 네덜란드를 봉쇄했다. 이로 인해 암스테르담은 심각한 기근을 겪었으며, 제대로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한 임산부들은 저체중아를 낳았다.


그런데 이때 태어났던 아기들은 성장하면서 뚜렷한 특징을 나타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들보다 오히려 체중이 더 나가고 키가 더 컸던 것. 또한 그들이 성인이 된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만과 당뇨병을 앓는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산모로부터의 음식물 섭취가 적은 환경에 처한 태아의 경우 신진대사율을 낮추어 가능한 한 많이 칼로리를 비축하게 된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배고픈 기억이 생체리듬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풍족한 영양 환경을 만나자 그에 적응하지 못한 채 비만과 당뇨병이 발병했던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행해진 연구결과에서도 저체중아로 태어난 소아는 정상으로 태어난 소아보다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대사증후군 위험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암스테르담의 저체중아들이 결혼해서 낳은 후손들의 건강까지도 좋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산모의 일시적인 영양 부족이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한 연구결과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다. 연구진은 임신 중인 실험쥐에게 정상적인 먹이보다 칼로리 함량이 50% 부족하게끔 공급했다.


그 결과 실험쥐들은 저체중 새끼들을 낳았으며 그 새끼들은 성장하면서 당뇨병 징후를 나타냈다. 또 그 새끼들이 자라서 낳은 3세대 새끼들 역시 당뇨병 증상을 보였다.


연구진은 정상적 환경에서 성장한 새끼와 실험대상군 새끼들의 정자 게놈 메틸화를 비교한 결과, 그 패턴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메틸화란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그중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고 비활성화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놀라운 것은 실험대상군의 경우 3세대에 이르러 메틸화 패턴 변동이 사라진 후에도 유전자 발현 변화는 여전히 유지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정자에 생긴 메틸화 패턴 변화는 미지(未知)의 메커니즘을 통해 유전자 활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주당 이씨가 쓴 태교 지침서인 <태교신기>에는 “스승의 10년 가르침보다 어머니 뱃속의 10개월이 낫다”고 적혀 있다. 이를 앞의 연구결과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태어난 후 30년의 영양상태보다 어머니 뱃속의 10개월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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