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炙塵霾轍跡深(일자진매철적심)
햇빛 내리쬐고 흙비 내려 바퀴 자국 깊이 패는데
馬嘶羊觸有誰禁(마시양촉유수금)
말은 울고 양이 뿔로 받으니 누가 막으리
劇憐春雨江潭後(극련춘우강담후)
강가에 봄비 내린 후 몹시 그리운 것은
一曲淸波半畝陰(일곡청파반무음)
한 굽이 맑은 물결에 그늘 드리운 고향 버들
河間城外柳(하간성외류) / 전겸익
원치 않은 여행길에 나선 지은이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한길가의 버드나무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읊은 시다. 바퀴 자국 깊이 파인 길에서 양의 뿔에 나무 둥치를 부딪치기도 하는 버드나무가 마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처럼 여겨진 모양이다.
식물들 입장에서 보면 식물인간이란 말은 좀 억울하다. 식물인간은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기능은 상실되었으나 뇌간은 살아 있어 호흡과 소화, 순환 따위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를 일컫는다.
눈과 귀가 없고 근육의 수축 운동을 위해 신경이라는 네트워크가 필요 없으니 뇌마저 없는 식물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그런데 식물의 경우 제자리에서 움직일 순 없으나 식물인간처럼 의식마저 없진 않다. 귀가 없고 입이 없으니 식물들은 당연히 의사소통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식물은 사람이 하는 긍정의 말과 부정의 말을 알아들으며, 심지어 그 말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도 파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들끼리도 냄새로써 혹은 뿌리에서 내뿜는 수용성 화합물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그 같은 대화를 통해 친인척끼리는 서로 돕기도 한다.
최근엔 기생식물이 숙주식물의 방어 시스템을 확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령 RNA라는 새로운 언어가 하나 더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니 식물의 입장에선 아무런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안락사 논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식물인간이란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식물들이 너무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최근 들어 밝혀지고 있다. 캐나다의 오언 박사는 식물인간도 고도의 인지능력이 있으며, 간단한 장치에 의존할 경우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정상인과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주먹을 쥐는 상상을 하라는 등의 주문을 한 후 뇌파를 측정한 결과 16명의 식물인간 중 3명에게서 정상인과 동일한 패턴이 나타난 것. 이는 식물인간도 뇌파측정장치(EEG) 같은 간단한 장치를 통해 대화가 가능함을 시사하는 연구결과이다.
또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식물인간들에게 보여주면서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활성을 모니터링한 결과, 그들도 일반인과 유사한 뇌활성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를 보여주며 실험을 진행한 까닭은 선행 연구에서 fMRI 장비 속에 있던 실험 참가자들이 종종 딴 생각을 하곤 해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모티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럼 왜 하필 히치콕 감독의 영화였을까. 히치콕이 만든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러 단계의 추론을 해야 하고 다양한 복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정도 수준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도의 실행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식물인간도 고도의 인지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