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아의 방주

by 이성규

細草微風岸 (세초미풍안)

바람에 가는 풀 흔들리는 강가에서

危檣獨夜舟 (위장독야주)

위태롭게 밤을 지새우는 돛단배

星垂平野闊 (성수평야활)

넓은 들엔 별빛 가득하고

月湧大江流 (월용대강류)

큰 강엔 달이 떠서 흐르네


旅夜書懷(여야서회) 중에서 / 두보


관직을 떠나 배 한 척에 가족을 싣고 유랑 길에 오른 심정을 표현한 시다. 신의 계시를 받고 가족과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방주에 태운 노아의 심정도 이처럼 암담하고 외로웠을까.


구약성서 속 홍수 설화의 주인공인 노아가 만약 지금 방주를 만든다면 한 가지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발견해 이름을 붙이고 분류한 생물종은 170만 종 이상이다. 그중 식물과 미생물, 곤충, 어류 등을 제외하고 노아가 방주에 주로 실었던 육상 척추동물과 조류만 해도 총 2만 종이 훨씬 넘는다.


아무리 큰 배를 만든다고 해도 한 척에 모두 싣기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보다 훨씬 작은 공간에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유전자 샘플을 보관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지하 180㎡ 규모의 공간에는 액체질소를 담은 스테인리스 탱크를 설치해 동물들의 생체조직과 유전자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약 100만 종의 동물에 대한 샘플을 저장해 멸종되는 동물이 있어도 유전학 연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전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해 전 세계의 다양한 식물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곳도 있다. 노르웨이 본토에서 약 1천㎞ 떨어진 북극해 스피츠베르겐 섬의 바위산 지하 120미터에는 완벽한 방재시설을 갖춘 저장고가 있다. 축구장 절반만한 크기에 수 미터 두께의 강화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데다 기밀식 출입구는 유엔과 국제기구가 보관하는 마스터키로만 열 수 있다.


이곳이 국제종자저장고로 선택된 이유는 천혜적인 자연환경 덕분이다. 저장소의 내부온도는 영하 18℃로 유지되고 매년 2차례씩 공기가 교체되는데, 만약 저온시스템이 고장 나더라도 이곳은 기온이 빙점 이상으로 결코 올라가는 일이 없어 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또 저장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스발바르 북극곰은 사납기로 유명해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2025년 6월 3일 농촌진흥청은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우리나라 토종 종자 4천 자원을 기탁했다. 2008년 노르웨이 농식품부와 협약을 맺은 이후 농촌진흥청은 이곳에 유전자원을 중복 보존하고 있는데, 이번 기탁까지 포함하면 총 4만2272자원이 보존되고 있다.

이것도 못 미더워 과학자들은 달에 저장소를 건립해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종의 유전자 표본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는 미국의 쟁쟁한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문명구출동맹(ARC)이며, 유럽우주국(ESA)에 소속된 일부 과학자들도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들은 결코 기우가 아니다. 네이처는 2050년이 되면 생물종이 지금의 1/4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식물의 경우 1년에 4~5만종이 사라지고 있으며 어류들의 멸종 속도도 굉장히 빨라 이대로 가면 앞으로 50년 안에 물고기가 모두 사라진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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