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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conscientia.

by 김정우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루카복음 9장 7~9절(오늘의 복음)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양심.

양심은 라틴어로 conscientia

(콘스시엔티아)라고 한다.

풀이는

con- (함께)

scientia(알다)

즉 함께 알다는 뜻이다.

자신이 한 일을 함께 알고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헤로데는

자신이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요한이 다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났다.

그러자 다른 군중들 속에선 이런저런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때 헤로데가 자신이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왜 다른 소문이 돌냐 내가 직접 가겠다 했다.


즉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잘 아는 것이다.

이 양심은 본래에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데 현대 사회 속에선

CCTV가 바라보는 철저한 법률 사회 속에 살아가기에

어쩔 수 없이 양심을 가지고 산다. 원래는 CCTV나

법률이나 증인이 없이도 자신이 한 일을 알며

뉘우치고 판단하고 행해야 하는데

현재 사회는 어쩔 수 없이 법을 지키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는 많은 악행이

벌어진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력, 사기,

살인 등등 정말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쟁 속에서도 PTSD가 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소리에 정신 분열도 오지만 내가 살인을 하였을 때엔

양심에 의해 내가 한 일을 내가 기억하고 내가 알게 된다. 그래서 후유증과 정신적 질환이 오는 것이다.

양심이란 것 때문에 나의 삶이 윤택할 수 있게 되지만

때론 그 양심 때문에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아프지 않게 하는 양심을 가지려면

우리 인간들 속에 평화가 있어야 하고

타의적이 아닌 자의적 양심을 기르며 살아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정말 쉽다. 주님이 모세에게

알려주신 십계명만 지키며 살아가도 삶이 윤택해진다.

단 10개의 계명중 7개를 지키며 살아도 나의 양심은

나를 해하지 않는다.

(십계명 중)

4.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5. 사람을 죽이지 마라.
6. 간음하지 마라.
7. 도둑질을 하지 마라.
8.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얼마나 선한 일인가? 이것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기에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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