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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숨 Nov 22. 2024

상처 1

너와 함께 성장하는 나

책을 사랑하는 아이..

30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며,

여자아기는 60년 만에 태어났다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

까르르 웃고, 발랄하고, 밝은 아이..

첫째를 보고 있으면 그 밝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한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그 후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삼 남매 독박육아, 독박살림에 직장까지 다니고 있어서 수빈이가 극복하고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내가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날즈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아이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엄마! (엉엉엉) 나보고(엉엉엉) 도둑이라고 애들이(엉엉엉) 막 그랬어(엉엉엉).

  나 안 훔쳤는데(엉엉엉) 훔쳤다고(엉엉엉) 애들이(엉엉엉) 다 뭐라고 했어(엉엉엉)”

“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이야기해 봐”   

  

이미 아이의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있었고 울음소리에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 과학 수업 시간이라서 과학실 가야 하는데

  A 친구가 책이 없어졌다고 하니까 B 친구가 나한테 훔쳐 간 거 아니냐면서 갑자기 내 책상 서랍을 봤는데

' 이것 보라고 여기 있다고' 막 그러면서 A 과학책을 내 책상 서랍에서 꺼냈어.

 

그래서 ' 난 몰라. 내가 그런 거 아니야'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다 내 책상 서랍에서 나왔다고 뭐라 하고.

내가 너무 당황해서 막 울었거든. 그랬더니 왜 우냐고 B가 막 그러면서 짜증 내며 소리쳤어.

내가 계속 우니까 선생님이 오셨는데, '  네가 우니까 선생님도 알게 됐잖아 '  라면서 또 화냈어"


" 뭐라고? "

아이의 이야기를 듣자니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생각이 멈춰졌다.


" 선생님이 A랑 B랑 이야기하더니 B가 나한테 사과했어. 미안하다고 쪽지 줬어..”

“ 너를 도둑으로 몰아놓고? 왜 그런 건데? ”

“ B가 A랑 놀고 싶었는데 나랑 노니까 샘나서 그랬대. 그래서 A 책을 나한테 넣어놓고 나한테 도둑이라고 한 거였대. ”     


충격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일부러 내 딸을 도둑으로 몰았다는 것과, 그 A는 수빈이 그리고 B와 함께 친하게 지내며 체험학습도 같이 다니고 생일파티도 하고,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지냈던 아이였기에..     


아이가 흐느끼며 이야기를 하는데 60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수빈이를 볼 때 받았을 아이의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     

동네에서 유일하게 교류하던 집의 아이가 나의 아이에게 해코지를 했다.

어쩌면 난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가 잘 견뎌서 극복하기 바랐고,

그 아이에게 사과를 받았으니 그냥 넘어가주길 바랐고,

여전히 그 엄마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내가 해결 방법을 몰라 도망치고 싶었는지

그 상황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는지

그렇게 난 그 문제를 담임선생님에게 확인하지도 않은 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렇게 나의 그릇된 판단과 행동으로 나의 사랑스러운 딸에게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아파트 전세 기간 만료를 앞두고 전세금에 문제가 생겨서 집주인과 일주일 넘게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내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내가 알아서 집을 빼고 가라고 하며 배 째라는 식이었다.

수빈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급하게 분가를 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집주인을 잘못 만났고,

일이 꼬여버렸다.

그래서 집 문제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아이 문제는 뒤로 한 채 아이가 그냥 잘 넘어가주길 바라며

모른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 후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는 그 일이 잊히고 있었다.


당장 살 집과 전세금 문제를 알아보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며 나를 합리화했고,

아이는 그렇게 나로부터 버려졌다.     

지금도 내가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다.


내 딸 수빈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믿었던 엄마에게서 버려진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이 세상에 혼자인 느낌이었을까?

그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2학기 개학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집은 다행히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며 우린 탈출에 성공했고

마음 한켠에 묻어두었던 그 일이 생각났다.


아이의 문제에서 내 문제로 커질까 봐 직면하지 못했고,

아이가 견뎌내기만을 바랐던 못난 내가 한없이 미워졌다.




< 2학기 학부모 전화상담 >


“ 안녕하세요 어머니”

“ 네 안녕하세요, 오늘 상담은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신청했어요”

“ 네. 수빈이 어떤 점이 궁금하세요? ”     

“ 선생님.. 제가 그때 여러 상황들이 겹쳐서 미쳐 연락 못 드렸는데요, 1학기 말에 수빈이가 도둑으로 몰렸었다면서요?

  B가 책을 훔쳐서 수빈이 책상 서랍에 넣었고,

  도둑으로 몰았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제가 그때 상황을 잘 못 처리한 것 같아요. ”


“ 어머! 알고 계셨어요?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저한테 연락을 바로 주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이렇게 말씀 안 드렸으면 끝까지 이야기 안 하셨을 것 같은데요.”


“ 죄송합니다. 어머니. 수빈이가 이야기를 하던 가요?”

“ 네. 그날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실관계를 밝혀주시고, 사과도 받았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고 넘겼는데

  저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아이가 힘들어하네요.

“ 아.... ”


“ 선생님께서 직접 그 엄마에게 상황 이야기 해주세요. 이제 와서 제가 연락해서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친해도 자식 문제인데 제 말을 믿을까 싶기도 하네요.”

.

.

< 그날 저녁>

“ 수정아 나야 ”

“ 어.. ”

“ 담임선생님 전화받았어. 네가 직접 이야기하지 그랬어?

  그런 일 있는 줄도 몰랐어. 내가 B 혼냈어.  A랑 너무 놀고 싶어서 그랬다는데 잘 못 했지. 미안해 ”     


나와 통화를 마치고 난 후 담임선생님은 그날의 이야기를 했고 B의 엄마는 내게 수화기 너머로 사과를 하며 잘 교육시키겠노라 이야기 후 전화를 끊었다.


착잡했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내 상황과 감정이 뭐라고.. 그 어린아이에게 용서하라 이야기했을까..?

수빈이는 B에게 사과는 받았지만 진심 어린 사과라 못 느꼈기에 지금까지도 아픈 상처로 남았다.

B는 너무 늦은 꾸지람을 엄마에게 듣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잊어버리고 혼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다음 해 4학년이 되면서 수빈이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있었던 아픈 기억들은 다 잊고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 혼자 잘 적응하리라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걱정 반 기대반으로 새로운 학교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어날 엄청난 일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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