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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스 멘탈코치 Nov 05. 2024

자취방에서 만난 아드린드 3 (완결 편)

「자취방의 추억들」

     


♡ 전편에 이어     


누굴까? 도대체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실눈을 뜨고서 밖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실루엣의 정체가 누군지는 알기가 어려웠지 그렇게 내 머릿속이 복잡하고 있을 때에 그 그림자는 슬며시 사라지더군 나는 너무 궁금해서 얼른 일어나 창문에 있던 그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지 그리고 주인집으로 누군가가 급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야 만 거야     

그 정체는 지선이었어. 늘 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를 외면했던 바로 그 둘째 딸이었던 것이지     

"하! 요것 봐라 이 앙큼한 것이 말이야!"     


지선이는 몇 번이나 나를 훔쳐보았을까? 나는 언니인 지연이를 훔쳐보고 동생인 지선이는 나를 훔쳐보다니 하하하 세상에~ 중학교 2학년 학생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사춘기 소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나의 존재가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느 날 지선이 오빠였던 윤기가 내게 말해 주기를 동생 지선이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더군. 윤기가 어쩌다 동생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는데 내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해서 나는 언니인 지연을 마음에 두고 지선은 나를 마음에 두는 묘한 삼각관계가 이어져 갔던 거였어     


그 후 큰 딸 지연이는 근처에 있는 W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을 하였고 나와 누나는 좀 더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 내가 한동안 친구 집에 있었던 관계로 누나 혼자 이사를 해서 지연이네 가족들과 별다른 작별 인사도 없이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지. 사실 헤어졌다기 보다 그냥 서로 다른 곳에서 살게 된 것이지 뭘~     


우리가 주고받았던 것은 일방적인 눈길이나 피아노 선율이 전부였던 것이며 별다른 대화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우리는 멀어지게 된 것이야     

나를 향한 지연이의 속마음은 오직 나의 상상 속에서만 평가되었고 가치가 부여되었는데 그녀의 기억 속에 나의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었지          


다시 만난 지연과 지선     


그 후 지연은 내 기억 속에서 잊혀갔어~ 나는 고3 생활을 마치고 W 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을 했어 지연이가 다니고 있는 바로 그 학교 말이야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고등학교 시절과는 사뭇 다르더군. 남자애들만 우글거리던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예쁜 여학생들이 함께 있으니 딴 세상 같았지. 건축공학과는 공과대학이라 여학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신입생 100명 중에 30명 정도가 여학생이었어 세상에! 사실 공대에서 건축공학과가 여학생들에게는 가장 인기가 많았지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고 캠퍼스를 다니다가 바둑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는 벽보를 보고 가입을 하게 되었어. 바둑 동아리는 학생회관 5층에 있었고 그곳에 있는 선배들이나 동기들과도 금방 친해지게 되었지

    

내가 원래 바둑을 좋아하다 보니까 그곳 생활이 재미도 있고 동아리 회원들도 참 좋더군~ 그런데 내가 있던 바둑 동아리 옆에 독서 동아리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곳 복도에서 어느 날 우연히 지연을 만나게 됐어 뜨~아     

지연은 대학교 3학년이었고 여전히 착실한 학생으로 보였는데 독서동아리 회원이더군~ 복도에서 마주친 우리는 가벼운 인사말 외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할 수가 없었어. 예전에 그녀를 향했던 나의 마음도 아련하게 떠오르긴 했지만 나의 마음이 예전같이 뛰지는 않더군.     


그렇게 동아리를 오고 가면서 그녀를 몇 번 스치듯 만나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 반가워하더군 그러더니 가방 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주는 것이야     


연한 민트색 겉봉투에 들어 있는 꽃 편지였어~ 나는 그 편지를 받아들고 한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 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은 줄 아나? 놀랍게도 편지는 지연이가 쓴 것이 아니고 동생 지선이가 쓴 것이었어~ 언니를 통해서 대학 생활 하는 나의 소식을 지선이가 듣고 반가워서 쓰는 것이었지. 지선이도 어느새 성장하여 고등학생이 되었고 학교를 잘 다니고 있으며 내가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짧은 편지였지     


그때는 휴대폰도 없고 무선호출기도 없던 그런 시절이었어 어쨌거나 지선이의 편지는 나에게 상당히 충격을 주었지. 내가 그곳에 있을 때는 제대로 말 한마디 안 하던 아이가 이렇게까지 편지를 보내오다니 말이야     


편지를 받고 그냥 말 수 없어서 나도 몇 글자 적어서 안부를 언니 편에 보내 주었지 5월에 축제가 있으니 시간 있으면 놀러 오라는 말도 적고 말이야~ 그렇게 지연이가 나와 지선이 사이에 중간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중간고사를 마친 지선이가 진짜로 대학 축제에 와버린 거야~ 오 이런!     


혼자 오지는 않았고 친구 경하를 데리고 왔더군 축제 때 내가 있던 동아리에서도 천막 부스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나를 찾아온 거야 세상에~     


몇 년 만에 만난 지선이는 옛적에 그 철부지 모습은 아니더군 어느덧 성장하여 여고생 티가 났었지 데리고 온 친구 경하도 상당히 발랄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그녀들을 예뻐해 주고 근처에 있는 봉사동아리 부스로 데려가서 파전도 사 주고 했었지     


그때가 5월 한참 꽃이 많이 피는 때라 캠퍼스도 참 멋있었어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고 그녀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주고 했었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예전에 휴일마다 언니가 연주하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에 대해서 내가 얘기를 꺼냈는데 지선이가 말하기를 언니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며 자신이 연주했던 것이라고 하더군     


나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지~ 나는 그 곡을 들으며 별의별 상상을 다 했는데 말이야. 내가 상상했던 추억 속에 아드린느가 지연이가 아니라 바로 지선이었던 거였어 세상에~     


아무튼 그렇게 캠퍼스에 앉아 조잘대는 지선이가 왜 예전에는 말 한마디 없었는지 몰라~ 그 후로 지선이의 편지가 두어 번 더 나에게 왔으나 나의 대학 생활이 바쁘기도 하고 지선이에게 별 관심이 없다 보니 그렇게 멀어져 가더군.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해~ (끝)     




사진출처 (전홍규/ 페이스북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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