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 생활하던 때 이야기이다. 1991년 여름쯤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나는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에 있던 공병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3사단 훈련소를 퇴소해 이제 막 군생활을 시작하던 그 삭막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졸병 때는 누구나가 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일 것인데 당시 이등병이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대대 취사장 근처로 작업을 가게 되었는데 취사장 선임이었던 정창진 병장이 우리들을 불렀다. 커다란 흰색 앞치마를 두른 정 병장은 나와 같은 3중대 소속이었고 취사장에서 어느덧 선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약간 졸린듯한 눈, 키는 작고 이마가 약간 튀어나온 정 병장의 취미는 클래식 감상이었다. (역시 생긴 것만큼이나 고리타분한 음악을 듣고 있군.)
어디서 구했는지 고물 스피커들을 취사장 여기저기에 설치를 하고 라디오에 연결해 클래식을 듣고 있었는데 클래식 방송 주파수를 시간대별로 쫙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훈련소와 자대에서 늘 군가나 부르다가 취사장에서 듣는 클래식은 다른 세계 같았다.
나 역시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선율에 빠져들었다. 나는 입대하기 전에 팝송을 좋아했었고 스콜피온즈나 퀸의 노래를 즐겨 들었었다. 박원웅과 함께 라든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즐겨 듣곤 했었다.
군대에 와서 고생을 해서일까? 하프 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이어지는 바이올린 소리는 애절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듯했다. 마치 여명속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를 바라보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직 날이 밝기 전에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듯했으며 그동안 긴장했던 나의 군 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끊어질 듯 애절하게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곡을 정 병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있다가 나에게 말했다.
"야~ 이 곡 너무 좋지 않냐? 너도 음악을 들으려면 이런 클래식을 들어봐. 이게 바로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이라는 거야"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은 취사장 정 병장과 함께 클래식 선율에 빠져들었다. 속으로는...
"배도 고픈데 취사장에 있는 초코파이라도 줄 일이지 뭔 클래식 타령이야"
정 병장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라디오 채널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클래식을 듣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클래식에 입문하게 되었다. 군대를 전역한 후에도 어쩌다 이곡을 들을 때면 취사장 정 병장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정창진 병장님,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실까 궁금하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 정병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