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아랫목 쪽에 앉아 무릎 위에 이불을 덮고 있었고 열심히 라디오 강의를 들으며 교재에 집중하고 있었지. 그녀는 원피스로 된 편한 잠옷을 입고 입었으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카락이 하얀 목덜미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담요를 무릎 위에 올리고 교재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상체가 정면에서 보였고 특히 봉긋한 가슴이 나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 나는 옥상 끝 난간을 겨우 붙잡고 고개를 최대한 내린 채 그녀의 모습을 그렇게 집중하고 있었단 말이야 늦가을에 찬바람이 불어왔어도 내 가슴은 사정없이 뛰고 있었어.
나에게는 누나들이 넷이나 있었고 다들 미인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누나들을 볼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야릇한 감정을 느꼈던 거야.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야밤의 데이트는 이어졌고 그녀가 대학 시험을 마치자 그런 데이트도 끝이 나게 됐어
어느 일요일 오전, 그녀의 단독 콘서트 ♪♬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창문 너머로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던 거야.
띵 띵 띵~띠딩 띵디디디딩띠딩 띵 띠딩 ♩♪ "앗! 이 어설픈 피아노 소리는 뭐지?"
내 자취방 왼쪽에 있는 주인집의 끝방이 바로 딸들이 거하던 방이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내 창문을 넘어 내 귓가에 들려왔던 거였어 내가 훔쳐보던 빈 방은 오른쪽에 있었고 말이야
내가 좋아하던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는데 조금은 매끄럽지 않은 투박한 연주였어. 이제 겨우 초보를 벗어난 수준이랄까? 오디오 마니아였던 내 귀에 그녀의 터치 하나하나는 예리하게 평가되었었지 건반을 터치하는 그녀의 손끝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왔던 거야
아마도 대학입시가 끝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지연이가 연주하는 듯했고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모습이 내 눈에 그려졌었지. 비록 서툴긴 했지만 그 곡을 끝까지 연주하는 걸 보았을 때 아마도 이곡을 작정하고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중간에 틀린 음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끝까지 치곤 했지
치는 모양새로 보아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 정도는 연습을 했을 듯한데 내 귀에 익은 이런 곡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괜히 통한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 후에도 휴일이면 어김없이 지연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내 창가로 흘러 들어왔는데 다른 곡은 기억이 나지 않고 오직 그 한 곡만을 반복해서 연주하더군
"이 곡이 지연이가 가장 자신 있는 곡일까? "
"왜 지연이는 다른 곡은 연주하지 않을까? "
"혹시 그녀는 바로 옆방에 있는 나를 위해 연주하는 것은 아닐까?"
휴일 오전에 들려오는 그녀의 연주는 마치 나만을 위한 콘서트 같았지 그녀의 건반 터치를 통하여 어쩌면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 느껴졌을지도 몰라. 아무튼 안집과 내 방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을 넘어오는 피아노 선율들이 그녀의 떨리는 마음을 담아 오는 듯했는데 나만의 착각이 아니길 바랐었지
내 방은 유리창이 아니었고 한지가 있는 종이 창문이었어 그런 종이 창문 틈으로 그녀의 멜로디가 계속해서 흘러 들어왔던 것이지. 그런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도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문득 종이 창문 너머 검은 그림자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 어? 뭐지?
일어나지 않은 채로 실눈으로 유심히 보니 분명 누군가 내 방을 보고 있더군 창문에 난 종이 구멍 사이로 누군가 내 방안을 훔쳐보고 있었던 거야 헉! 그게 누구였냐고? 그 얘기는 다음 편에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