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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스 멘탈코치 Oct 22. 2024

자취방에서 만난 아드린드 1

알바스의 추억들


시골에서 올라온 17살 소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자취방에 추억들을 이제야 털어내 본다





■ 드디어 자취를 시작하다


그러니까 그때가 1986년 봄이었어.  나는 김제시 근처에 있는 도시 익산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고 거리가 멀다 보니 익산에서 공장에 다니는 누나 자취방에 얹혀살게 되었던 것이지. 내가 누나와 함께 살기로 결정되자 누나는 조금 더 큰 자취방을 얻었. 물론 생활은 자취방에서 함께 하지만 누나는 그곳에서 잠을 자고 나는 거의 독서실에서 잠을 잤기에 별로 부딪칠 일도 없었지.


어쨌거나 시골 촌 동네에서 익산으로 올라와 보니 그곳은 도시로 보이더군. 지금 생각하면 그 자취방은 차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에 있는 허름한 주택이었는데 말이야. 작은 도로에서 골목길로 한참이나 들어가야 나오는 그런 집이었고 군데군데 녹이 슨 녹색 철 대문이 있던 집이었어. 끼이익 소리를 내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있었고 또 마당 건너엔 안채가 있고 마당 왼쪽으로는 자취방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비어 있었고 하나는 나와 누나가 살던 방이었지.


당시에는 연탄보일러가 흔하던 시절이었는데 내 자취방도 연탄 하나를 넣는 구조였고 그나마 누나는 연탄을 아낀답시고 최대한 아궁이 통풍 구멍을 막아서 하루에 하나씩 땠던 걸로 기억이 나. 그곳에서 나는 누나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는데 시골에서 늘 듣던 엄마 잔소리에서 해방된 것과 더 이상 등하교 시에 신발에 흙이나 이슬을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지.


내가 시골에 살았어도 그래도 나름 멋쟁이 학생이었고 얼굴도 나름 자신 있었다고. 당시 학생들은 신발 밑창의 고무에 하얀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멋이라고 여겼었지. 그런데 나 같은 시골 애들의 신발 밑창은 항상 흙이 묻어있어 누랬었단 말이야 그땐 그게 그렇게 창피했었지



■ 주인집 사람들


주인아저씨는 시청 공무원이었고 통통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계셨고 딸 둘에 아들이 하나 있었어. 큰 딸은 고3이었고 이름은 지연, 적당한 키에 상당히 예쁜 하얀 얼굴을 지닌 성숙한 여고생이었지. 그리고 아들은 이름이 윤이라 했고 나와 동갑이었어. 막내딸은 중학교 2학년 지선이었는데 한참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였어.


윤이는 나와도 상당히 친해졌고 나의 자취방에 놀러 오기도 하며 함께 바둑도 두곤 했는데 두 딸은 영 새침데기였어. 그나마 큰딸 지연이는 가끔 나와 마주칠 때면 눈 인사라도 하였지만 지선이는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나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뛰어서 들어가곤 했어



■ 그해 늦가을, 그녀의 이름에 밑줄 쫙


어느덧 계절이 두 번 바뀌더니 지연이는 대학 시험을 앞두고 한참 공부에 열심이었지. 그때는 밤 11시경에 라디오에서 서한샘 선생의 국어 강좌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걸 내 옆에 있던 빈 자취방에 들어가 혼자서 꼬박꼬박 듣는 거였어. 아마 자기 방에서 듣기에는 가족들이 있어서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매일 밤 지연이가 옆방에서 국어 강좌를 들을 때면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어 당시 자취방은 워낙 방음이 안돼서 옆방의 소리가 그냥 그대로 들려왔었지. 특히 그 서한샘 선생 특유의 목소리인 '동그라미 밑줄 쫙' 그 소리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방 안에서 집중이 잘 안되는 거야 물론 나는 평소에는 도서관에 갔었는데 누나가 공장에서 야간 조 근무일 때는 내가 자취방에서 자는 때도 많이 있었거든


아무튼 17살 소년의 마음이 이상해지더란 말이지 겨우 벽 하나 사이를 놓고 옆방에 다 큰 여고생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더라고. 눈을 감아도 자꾸만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 성숙한 몸매에 새하얀 얼굴의 그녀가 지금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옆에 있는 거야~ 내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렸고 나는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그 모습이 자꾸만 궁금해지더란 말이야.


이미 밤은 11시가 넘어서 씻었을 것이고 편한 옷차림으로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잠옷을 입고 있는지 운동복을 입고 있는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니까! 그래서 못 참고 그녀의 공부하는 모습을 한번 보기로 작정을 했어. 내가 있던 자취방은 단층이었고 건물 옆에 계단을 오르면 바로 옥상이었어 그리고 그 옥상 아래 두 개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었던 것이야. 그리고 옥상에서 조금만 고개를 내려서 아래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방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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