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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스 멘탈코치 Oct 08. 2024

그해 겨울, 위도 여행기

정처 없이 떠난 청춘들


1995년 겨울, 나는 친구 정휘와 정처 없는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중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던 상황이었다. 그런 나와 동행이 되어 주었던 친구, 정휘는 나를 만나면서부터 많은 고생을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다. 녀석...

흘러 흘러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부안군 격포항이었는데 그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 우리는 위도로 떠나기로 했으나 여비가 너무 부족했다. 격포항 한쪽에서 자리 잡은 후 내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면 정휘는 모자를 들고 서있기로 하였다.


격포항 (2022 여름)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마~안주 버어얼파아아아안~" ♪♬


나는 나름대로 온 정성을 다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으나 정휘 녀석은 수줍음이 많아 슬그머니 모자를 뒤로 감추고 한쪽으로 피해버렸다. 나는 한쪽에 서있는 정휘에게


"너 특공대를 갔다 온 게 맞냐? 자꾸 이럴 거야~"


"......"


그렇게 해서 나 혼자 부르던 노래도 김이 빠져갔는데 사실 누가 들어주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 둘은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위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비릿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얼마쯤 가자 위도항에 도착하였고 배에서 내린 우리는 정처 없이 섬을 떠돌다가  한 어촌 집에 들어가 사정 얘기를 하고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곳 부부는 김을 양식하며 생계를 유지하었는데 젊은 우리들을 자식 대하듯 먹여 주고 재워 주셨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너무 고마워서 배낭에 있던 참치캔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고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막상 그 집을 나오고 나니 정말 우리에게는 돈도 없고 막막하기만 했다. 정휘가 말했다.


"이렇게 그냥 있을 수는 없잖여~ 다시 나가서 돈이라도 구해와야지 안 그냐잉?"


"그려~ 정 그러면 너는 먼저 가라"


둘의 주머니를 털어보니 겨우 한 사람 정도 타고 갈 뱃삯과 소주 한 병값 정도가 나왔다. 결국 위도항으로 돌아가 1인분 배표를 끊었고 둘이 소주 한 병으로 이별주를 했다. 정휘는 그렇게 먼저 배를 타고 위도를 떠나갔다.


이제 홀로 남겨진 나는 기타 하나 둘러매고 정처 없는 발걸음을 걷기 시작했고 위도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을 지나 벌금리에 도착하니 조금 떨어진 곳에 좁다란 다리로 연결된 정금도라는 섬이 보였다. 그 다리는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다리였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터벅터벅 그곳으로 향했다. 다리를 지나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열 채도 안 되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고 여기저기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겨울철이라 딱히 출항을 하지 않고 섬에 정박해 있었으며 그중에 여기저기 부서진 곳을 고치는 배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배의 크기는 30톤 정도 될까? 어선 치고는 그래도 꽤 큰 배를 육지에 끌어올려놓고 수리를 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배 옆면과 아랫부분에 파손된 부분을 FRP 천으로 덧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 천을 필요한 만큼 잘라 본드 칠을 한 후 붙이는 것이었다.


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선장 부부와 젊은 남자 선원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선장님은 젊은 선원에게 자꾸만 큰소리를 쳤다.


"앗따양 이 썩을 놈이 그거 하나 못 맞춘다냐 잉"


아무래도 도와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자꾸만 거친 욕설과 함께 화를 내곤 하시었다. 그 젊은 선원은 쭈뼛쭈뼛하며 있었는데 지켜보던 내가 선장님에게 "아, 그거 제가 한 번 잘라 드릴까요?"라고 하자 흔쾌히 그렇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도와주기를 기다렸던 눈치였다.


그렇게 내가 끼어든 그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진행이 되었고 어느새 해가 저물게 되었다. 배가 상당히 크다 보니 그날 하루만으로는 모든 작업이 끝나기는 어려웠고 선장님께서는 내가 마음에 드는 듯했다.


"어이 잘 데 없으믄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도 좀 도와줘야 쓰겄는디~"


"그러면 저도 좋지요"


특별히 잘 곳도 없었던 나는 기쁘게 함께 갔다. (오~ 할렐루야!)


바로 근처에 선장님 집이 있었고 바닷가라 그런지 푸짐한 해물과 함께 모처럼 식사를 푸짐하게 먹었다. 사실 위도항에서 정휘와 깡소주 마시고 점심을 구경도 못한 채 일만 했으니 그 저녁식사가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그리고 나는 민석이라고 불리던 그 젊은 선원과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민석이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 서로가 말을 놓고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상당히 친해지게 되었다. 민석이는 여차여차해서 그곳에 취직한 선원이었던 것인데 배움이 짧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민석이는 일찌감치 뱃일을 하기로 작정을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정금도에서 하루 이틀 머물던 것이 어느새 닷새가 되었고 수리하던 배도 마무리가 되었다. 공병대를 전역한 나의 솜씨가 배를 수리하는 여기저기에 쓰임을 받게 되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나는 두꺼운 종이를 오려 그 배의 이름인 갑진호라는 글씨를 고딕체로 파낸 후 스프레이 래커를 뿌려 멋있게 뱃머리 양쪽에 새겨 드렸다. 그걸 본 동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신들 배의 이름도 새겨 달라며 부탁을 해 왔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 배에도 글씨를 써주며 친해졌고 이제는 진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갑진호 선장님은 내가 없었다면 배를 수리하기가 어려웠다며 연신 고마워했고 이제 떠나가야 하는 나에게 두둑한 여비를 보태 주셨다. 민석이도 나와 헤어지는 것을 몹시 아쉬워하여 내가 다음에 성공하면 이곳에 꼭 다시 들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정금도에서 나와 위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격포로 나왔다.


그 해 겨울 추운 날씨와 함께 나의 청춘은 그렇게 방황을 하고 있었다. 아 정금도를 떠나온 지도 벌써 30년이 다 돼가는데 갑진호 선장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지 궁금하며 마을 사람들도 가끔 생각이 난다. 민석이는 또 어떻게 지내는지도...


올겨울에는 꼭 위도에 가 보고 싶다. 어쩌면 나의 젊은 시절 방황의 흔적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바닷가 선착장에서 (2022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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