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와 난청을 가진 앨리스 이야기
내 아이가 자폐라니
나는 2007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발달장애 아이들을 학교에서 만났다. 하지만 내가 발달장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식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 아이들의 발달장애를 철저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2019년, 내가 초등교사가 된 지 13년째가 되던 해, 나의 첫 아이인 앨리스가 태어났다. 앨리스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청력 이외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나는 아이의 목 가누기가 또래들처럼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앨리스는 고개를 들면 머리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해 미세하게 흔들렸는데, 알아보니 다른 아기들은 생후 3개월 정도면 안정적으로 목 가누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내 아이의 발달 속도가 또래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그때, 나는 경력이 많은 초등교사로서 내 아이가 일반적인 범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먼저 동네 소아과 의원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서를 받아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도 방문했다. 그 후 앨리스는 예상대로 심각한 발달 지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발달 ‘지연’은 그저 또래의 발달속도만 따라잡으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앨리스가 또래의 발달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도록, 아이가 15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매일 6시간씩 집중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의 낮병동에 입소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일상은 사라졌다. 나는 매일 밤낮으로 아이의 재활과 발달지연 극복에만 전념했다.
아이의 재활 치료에 사활을 건 내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 때문인지, 앨리스는 심각한 발달 지연을 빠르게 극복했다. 앨리스는 낮병동에 입소한 지 4개월 만인 19개월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15개월 후인 30개월부터는 또래들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실시한 PEP-R검사에서는 전 영역이 또래 수준 이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심지어 일부 영역은 또래들보다 우수했다). 그리하여 내 일상을 포기하게 만든 지긋지긋한 낮병동도 졸업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후, 운명처럼 아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아이의 자폐 진단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내가 아이의 자폐 진단에 놀라지 않은 이유
아이를 데리고 낮병동에서 집중 재활 치료를 받았던 몇 년 동안, 나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발달장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다양한 기능과 증상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앨리스는 발달 지연의 격차가 점점 좁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앨리스가 단순 반달지연이 아니라는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유아 자폐스펙트럼장애 선별검사(M-Chat-R)에서 앨리스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매일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검색하고, 찾아보고, 읽어보았다. 그제야 어긋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대근육 발달이 느렸는지, 반향어(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말)를 왜 그렇게 오랫동안 했는지, 단어도 못 말하던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동요를 외워 부르게 되었는지, 글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글을 읽는 흉내를 낸 것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앨리스는 36개월에 실시한 ADOS(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자폐증 진단 관찰 스케줄) 검사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 기준에 부합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몇 개월 뒤 실시한 CARS(Childhood Autism Rating Scale: 아동기 자폐 평정 척도) 검사에서도 역시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결과가 나왔다. 앨리스와 직접 면담한 의사도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말했다. 내 오랜 의심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아이가 자폐라는 소리에 기뻐할 부모는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이의 확실한 진단을 기다려온 탓인지 속이 후련했다. 내 예상이 맞았다. 발달 지연이라는 장막이 사라지니 아이의 자폐스펙트럼이 뚜렷하게 보인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앨리스가 전형적인 아이와 같아지리라는 기대도 버리게 되었다. 그보다는 앞으로 ‘자폐인’인 앨리스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제삼자처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한 번도 내가 직접 걸어볼 것이라고 예상해보지 못했던 발달장애 아이를 양육하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발달지연 아이들의 양육자들이 가입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아이가 자폐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 하나로 엄청나게 좌절하는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의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장애가 그렇듯이 자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양육자에게도 매우 힘겨운 짐이다. 자폐의 경중에 따라 양육자는 비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몇 배의 고생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평생 아이의 곁에서 보호자로 함께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자폐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그 아이의 인생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사실 자폐스펙트럼장애 여부를 떠나 모든 아이의 미래는 확실하지 않다. 비자폐인이라고 해서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폐 성향이 있더라도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부각되지 않았을 뿐, 실제로 자폐 진단을 받았으나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으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런 사람들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가 자폐 성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앨리스는 ADOS 및 CARS와 같은 자폐 진단 도구 및 선별 검사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결과를 받은, 즉 의학적인 진단을 받은 자폐인이다. 하지만 36개월 이후 발달 검사상 뚜렷한 발달 지연은 없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근육 발달은 또래에 비해 느리고, 소근육 발달은 일부 영역에서는 또래만큼 정교하지 않은 편이지만, 지능 검사에서는 평균 지능을 보였고 언어 검사에서도 언어 능력이 또래 수준이었다. 그러나 화용언어 수준이 좋지 않아 대화를 할 때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할 때가 많다.
앨리스가 모든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이들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꽤 많은 자폐스펙트럼 장애 아이들이 앨리스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발달이 느리다고 표현할 수 없다. 이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며, 강점과 약점이 뚜렷하다. 이러한 아이들을 키우는 양육자는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성을 아이의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는 ‘치료’라는 이름의 교육을 분명히 받겠지만, 그것은 아이가 삶을 좀 더 쉽게 살아가기 위한 요령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 아이의 자폐를 낫게 해주는 의료 행위는 아니다. 자폐 성향은 변하지 않을 아이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앨리스와 같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의 특별함을 빨리 발견하고, 온전히 이해하며,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 주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시간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황금 같은 시간이다. 이 시기에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아이의 강점을 살려주는 일은 결국 우리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성인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완치하는 기적의 치료법과는 관련이 없다. 나는 일개 양육자로서 현대 의학이 아직 개발하지 못한 자폐 치료법을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아이의 자폐를 좀 더 일찍 발견하고 개입하였으며, 아이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어쩌면 내가 초등 교사로 오랫동안 자폐 아이들을 교실에서 지켜보고 가르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폐가 있는 아이가 좀 더 수월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자가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이를 통해 아이와 양육자 모두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