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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맘 뤼 Oct 08. 2024

내 아이가 자폐라니

자폐와 난청을 가진 앨리스 이야기

내 아이가 자폐라니

나는 지난 2007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발달장애 아이들을 학교에서 만났다. 하지만 내가 발달장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식들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발달장애를 철저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2019년, 내가 초등교사가 된 지 13년 차가 되던 해, 나는 내 생애 첫 아이인 앨리스를 출산했다. 앨리스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난청 진단을 받았지만 청력 이외에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아이의 목 가누기가 또래들처럼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앨리스는 고개를 들면 제대로 지탱하지 못해 머리가 흔들렸는데, 알아보니 다른 아기들은 불과 생후 3개월 정도면 안정적으로 목 가누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내 아이의 발달속도가 또래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그때, 나는 경력이 많은 초등교사로서 내 아이가 일반적인 범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먼저 동네 소아과 의원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서를 써주어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도 방문했다. 그 후 앨리스는 나의 불길한 예감대로 대학병원에서 심각한 발달지연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 아이가 발달장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발달지연은 그저 또래의 발달속도만 따라잡으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앨리스가 또래의 발달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도록 아이가 15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매일 6시간씩 집중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낮병동에 입소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일상은 없어졌다. 나는 매일 밤낮으로 아이의 재활과 발달지연 극복에만 매달렸다.      


아이의 재활 치료에 사활을 건 내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 때문인지, 앨리스는 심각한 발달지연을 빠르게 극복하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낮병동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인 19개월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15개월 후인 30개월부터는 또래들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당시 실시한 PEP-R검사에서는 전 영역이 또래 수준 이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심지어 일부 영역은 또래들보다 우수했다). 그리하여 내 일상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지긋지긋한 낮병동도 졸업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후, 운명처럼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신기한 것은 나는 아이의 자폐 진단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낮병동에서 집중재활치료를 받았던 몇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발달장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자폐로만 알고 있었던 자폐성 장애가 지금은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바뀌었으며 다양한 기능과 증상의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한편, 앨리스는 또래와의 발달지연의 갭이 점점 좁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앨리스는 단순한 발달지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유아 자폐 자가진단테스트(M-Chat-R)에서 앨리스는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매일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하여 검색하고, 찾아보고, 읽어보았다. 그제야 어긋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뇌병변도 아닌데 왜 그렇게 대근육이 느렸는지, 24개월부터 반향어를 왜 그렇게 심하게 했는지, 단어도 못 말하던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동요를 외워서 부른 것인지, 글자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글을 읽는 흉내를 낸 것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나는 앨리스가 자폐스펙트럼이 맞다고 생각하고 모 대학병원에서 주최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임상 연구에 참여했다. 덕분에 앨리스는 36개월쯤 대기 없이 무료로 ADOS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결과는 앨리스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 뒤, 다른 병원에서 CARS 검사도 했는데 역시나 앨리스는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결과를 받았다. 의사도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 맞다고 했다. 내 오랜 의심을 의학적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아이가 자폐라는 소리에 기뻐할 부모는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이의 확실한 진단을 기다려서인지(?) 전혀 슬프지 않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그럼 나는 이제 앨리스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 나는 제삼자처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한 번도 내가 직접 걸어볼 것이라고 예상해보지 못했던 발달장애 아이를 양육하는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

발달지연 아이들의 부모들이 가입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거나, 자폐 성향을 보이기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좌절한다. 그들의 두려움의 이유는 합당하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보건복지부에 등록 가능한 “장애”라고 규정되었을 것이다. 또한 모든 장애가 그렇듯이 장애를 가진 당사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에게도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매우 힘겨운 짐이다. 자폐스펙트럼의 정도에 따라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어쩌면 평생을 아이의 곁에서 보호자로 함께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자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그 아이의 인생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다양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의 결말을 미리 넘겨짚으며 좌절하곤 하지만 사실 자폐스펙트럼 여부를 떠나 모든 아이들의 미래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대부분의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비장애 아이들에 비해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더라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비장애인들만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도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앨리스는 현재 발달검사상 뚜렷한 발달지연은 없다. 그러나 대근육은 또래에 비해 확연하게 느리고 소근육도 일부 영역에서는 또래만큼 정교하지 않다. 지능검사상 지능은 평균지능이며 언어검사상 언어도 또래 수준이지만 화용언어의 수준이 좋지 않아서 대화를 할 때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ados 및 cars와 같은 자폐성 장애 진단 검사에서 모두 자폐진단점수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앨리스가 모든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을 대표하지는 못하지만 꽤 많은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앨리스와 같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며 강점과 약점이 뚜렷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선물하려면 양육자가 먼저 아이의 모든 면을 온전하게 이해해야 한다. 아이가 가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징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는 치료라는 이름의 교육 행위를 분명히 받게 되겠지만 그것은 아이가 삶을 좀 더 쉽게 살아가기 위한 요령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 아이의 자폐를 낫게 해주는 의료 행위는 아니다.      


앞으로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앨리스와 같은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이런 아이들이 갖는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해 주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성인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없애는 기적의 치료법과는 관련이 없다. 현대의학이 아직 개발하지 못한 자폐 치료법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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