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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스펙트럼장애를 판단하는 진짜 기준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오해와 진실 (3)

by 앨리스맘 뤼

2013년에 개정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분류 체계) 5판에서는 전반적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PDD)의 하위범주였던 자폐성장애(autistic disorder), 아스퍼거장애(Asperger’s disorder), 아동기 붕괴성 장애(childhood disintegrative disorder), 달리 명시되지 않은 전반적 발달장애(PDD-Not Otherwise Specified:PDD-NOS)가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라는 단일 진단명에 통합되었다 (천근아, 2024).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음

2.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에는 ‘지능지수’나 ‘언어능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능이 높다고 해서, 혹은 말을 잘한다고 해서 자폐가 아닌 것은 아니다. 또한, 자폐를 진단할 때는 발달 초기의 이력을 본다. 따라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의 증상이 현재 관찰되지 않더라도 유아기에 나타났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에 부합한다. 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자폐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그렇다면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과는 무엇이 다를까? 개인마다 증상이 나타나는 정도와 양상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앨리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앨리스의 현재 언어 수준은 REVT(어휘 검사)와 PRES(문장 검사)를 통해 측정한 결과, 또래 수준이며 특히 REVT 검사상 어휘력은 상위 1퍼센트에 달한다. 따라서 앨리스는 표면적인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또래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잘 표현하는 편이다. 가게에 들어가면 사장님을 찾아서 먼저 인사하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요구하며, 교회에 가면 어른들께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물어보며 묻는 말에도 또박또박 답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의사소통 능력과는 별개로, 앨리스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비언어적 신호를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대화 중에 적절한 주제를 유지하지 못한다. 또한, 친구들에게 자기만 알고 있거나 자기만 재밌다고 생각하는 관심사를 강요하고, 또래가 흥미 없어 해도 화제를 전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동은 처음에는 앨리스에게 호감을 보였던 주변 친구들이 나중에는 질려서 도망가버리는 원인이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앨리스는 외향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거의 없다. 앨리스뿐만 아니라 많은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이 사회적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특히) 또래 친구들에게 배척을 받는다. 이는 단순히 언어적 의사소통이 원활하다고 해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점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핵심적인 어려움 중 하나이다.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

그렇다면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이는 특별한 의도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행동에서부터, 똑같은 음식이나 물건, 의식, 규칙을 고집하거나, 혹은 제한적이거나 특이한 주제에 강렬한 집착을 보이는 것 등을 포함한다. 실제로 앨리스가 보이는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은 다음과 같다.


1.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앨리스는 24개월까지 책을 마구잡이로 넘기거나, 청소용 접착시트를 계속 뜯거나,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드는 등의 상동행동을 보였다. 현재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뚜렷한 상동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할 때는 발달 초기의 이력을 보기 때문에 앨리스의 경우는 상동행동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도 상동행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앨리스는 주양육자인 내가 상동행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알고, 내가 보지 않을 때 주로 상동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2. 의식이나 규칙에 대한 고집: 앨리스는 아기 때부터 순서나 차례, 규칙에 고집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 흔한 장난감 줄 세우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자신만의 순서를 정하여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린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규칙에 아예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앨리스의 경우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규칙에 대한 강한 고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3. 제한적이거나 특이한 관심: 앨리스는 특정한 물건이나 주제에 대한 집착이 없다. 하지만 특이한 주제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예를 들면, 귓속 달팽이관의 모습, 사냥 후 동물을 손질하는 절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이유 등 불특정하고 비일반적이며 상당히 구체적인 주제들이다. 이러한 특이한 주제에 대한 관심은 주로 최근에 읽은 책이나 보았던 동영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앨리스의 경우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때때로 비일반적인 주제에 강한 흥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명에 ‘스펙트럼’이란 글자가 들어간 만큼 그 증상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증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자폐를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약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생각이 든다면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소아정신과에 방문하여 자폐진단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전문가는 보다 체계적이고 정확한 평가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과 치료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자폐 진단을 위해 가장 쉽게 예약하고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도구에는 앞서 언급했던 아동기자폐평정척도 (CARS: Childhood Autism Rating Scale) 검사가 있다. 좀 더 자세한 평가 결과를 원하거나 자폐의 정도가 애매하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자폐증진단관찰스케쥴(ADOS: 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이나 자폐증진단면담지-개정판(ADI-R: Autism Diagnostic Interview-Revised) 검사를 받기도 한다.


아직 아이가 너무 어리거나 무턱대고 소아정신과에 방문하기 부담스러운 경우, 가정에서 자폐선별검사를 먼저 실시해 보는 것도 좋다. 손쉽게 할 수 있는 자폐선별검사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M-Chat-R 검사 : 영유아용 자폐 자가 진단 테스트

M-CHAT(Modified Checklist for Autism in Toddlers)은 16개월에서 30개월 사이의 아동을 대상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선별(Screening)하는 도구이며, 부모가 응답하는 설문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검사는 자폐 진단을 위한 검사 도구가 아님에 유념해야 한다.) 가정에서 양육자가 간편하게 자폐 가능성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양육자가 객관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앨리스는 16개월 경 실시한 M-CHAT-R 검사에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검사도구 PDF 다운로드 방법

네이버 블로그 <마이레인보우베이비>에서 M-CHAT-R을 검색하거나, 다음 링크를 통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myrainbowbaby/223214259680)


※점수 계산 방법

전체 20문항 중 2번, 5번, 12번 문항은 ‘예’일 경우 1점, 다른 문항은 ‘아니오’일 경우 1점으로 계산한다.

-총점 0~2점: 후속 조치 필요 없음

-총점 3~7점: 후속 조치 (추가 검사, 정밀 진단 등)

-총점 8~20점 이상: 자폐증 (즉시 치료 시작)


총점이 3점 이상일 경우 추가 검사와 정밀 진단이 필요하며, 총점이 8점 이상일 경우 즉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앨리스의 경우 총점이 3점과 7점 사이였다. 이러한 선별검사는 전문적인 진단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초기 단계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2. ASSQ 검사

고기능 자폐 선별검사이며 만 6세에서 17세 사이의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이 검사는 아이의 부모나 교사가 실시할 수 있으며, 언어 기능이 또래 수준인 아이의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유용하다. 검사 자료는 네이버 블로그 <마이레인보우베이비>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다음 링크를 통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myrainbowbaby/223435645266)


이 검사를 통해 부모나 교사가 아동의 행동 양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필요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초 자료를 마련할 수 있다.


3. 샐리 앤 테스트

샐리 앤 테스트는 자폐성 장애를 정의하는 특징을 보여주는 유명한 테스트로, 만 5세 이상의 아이들에게 실시할 수 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상황 설정: 샐리와 앤이 있고 그 앞에 상자와 바구니가 놓여 있다.

행동: 샐리가 공을 바구니에 넣고 나간다. 그 후 앤이 바구니에서 공을 꺼내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질문: 밖으로 나갔던 샐리가 돌아왔을 때, 샐리는 과연 어디에서 공을 찾을까?


정답은 바구니이며 자폐성 장애가 없다면 무난하게 맞힐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자폐가 있는 어린이들의 약 20%도 정답을 맞혔으므로, 이 테스트를 통해 정확하게 자폐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샐리 앤 테스트는 자폐성 장애의 사회적 인식 능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될 수는 있지만, 정확성이 낮으므로 단지 재미로 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4. AQ 테스트

AQ 테스트는 성인용 자폐 테스트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이 본인도 뒤늦게 자폐 진단을 받는 경우가 해외에서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독립한 성인이 자폐 진단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는 정신과 병원과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폐 검사를 받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본인의 자폐 여부가 궁금한 경우, 성인용 자폐선별검사인 AQ테스트를 통해 일차적으로 자폐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테스트는 네이버 블로그 <마이레인보우베이비>에서 직접 해볼 수 있으며 다음 링크를 통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myrainbowbaby/223442857041)


AQ 테스트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성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상담하여 추가적인 평가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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