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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눈치채지 못하는 자폐스펙트럼 신호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오해와 진실 (2)

by 앨리스맘 뤼

다음은 앨리스가 돌에서 두 돌 전후에 보였던 주요 자폐스펙트럼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들은 아이가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양육자가 아이를 평소에 잘 관찰해서 의사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의사도 증상의 유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만 3세 이하의 아이가 다음의 증상 중에서 하나라도 보유하고 있다면 자폐 여부를 떠나 조기 개입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꼭 아동발달센터에 가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상호작용놀이’라도 시작한다. 상호작용놀이는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하여 서로 주도권을 주고받는 놀이를 의미한다.)


대근육 발달 지연

대근육 발달 지연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이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증상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자폐인의 대근육 발달이 느린 것은 아니다. 또한, 대근육 발달 지연은 다른 여러 가지 장애의 증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영유아에게 대근육 발달지연 증상이 보여도 처음부터 이를 자폐스펙트럼 증상으로 여기는 의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가 뇌병변 장애나 특별한 유전적 질환이 없는데도 또래보다 잘 걷지 못한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앨리스의 경우, 생후 6개월이 될 때까지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등 또래보다 대근육이 6개월 이상 꾸준히 지연되는 모습을 보였다.


과잉행동(산만함)

아이가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산만하다면 ADHD뿐만 아니라 자폐스펙트럼장애도 의심해 볼 수 있다. 산만함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이다. (사실 ADHD와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공존하는 경우도 많다.) 앨리스의 경우, 두 돌 즈음까지 몸을 단 1초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손에 닿는 모든 물건들을 맹목적으로 끄집어내서 바닥에 던지는 과잉 행동을 계속했다.


언어 지연

언어 지연의 이유는 다양하다. 또한, 언어 지연이 있더라도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수록 의사들도 아이에게 언어 지연이 있다고 해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증상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그러나 만 4세가 넘었는데도 언어 지연의 폭이 줄어들지 않으면 꼭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아니더라도 다른 발달장애나 청각장애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한다.


물론 전형적인 발달을 하는 아이 중에서도 말만 늦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했지만 지나고 보니 괜찮았다.’라는 후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후기가 다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가 괜찮았다고 해서 내 아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낙관적 후기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 후회하기보다는 언어치료와 같은 조기개입을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전형적인 발달을 하는 아이라도 언어치료를 받아서 나쁠 이유는 전혀 없으며, 이런 경우에는 단 몇 개월 만에 언어치료를 졸업하게 될 것이다.) 앨리스는 16개월에 실시한 셀시(SELSI) 언어 검사에서 9개월 이상의 심각한 언어 지연을 보였다.


눈 맞춤

눈 맞춤이 안 되는 것은 잘 알려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징이다. 하지만 눈 맞춤이 된다고 해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아닌 것은 아니다. 앨리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일상생활을 할 때는 눈 맞춤이 매우 잘되지만, 유독 인사를 할 때는 눈 맞춤이 잘 안 된다. 이렇듯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도 눈 맞춤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눈 맞춤이 가능한지의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눈 맞춤의 질이 어떤지를 잘 살펴야 한다.


상동행동 (자기자극행동)

같은 자리를 빙빙 돌거나, 손을 위아래로 펄럭이고, 책장을 마구 넘기는 등 의미 없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상동행동(stereotyped behavior)이라고 한다. 이는 특별한 기능적 목적 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주요 특징이지만 일반적인 아이들도 영유아 시기에는 상동행동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비자폐인 성인들도 다리를 떨거나 손가락을 꼬는 등의 상동행동을 하기도 한다.


앨리스의 경우 손을 펄럭거리거나 머리를 흔드는 등의 상동행동을 자주 했고, 특히 책을 보지도 않으면서 책장을 빠르게 넘기는 행동을 반복했지만 현재는 눈에 띄는 상동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지 않을 때 상동행동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힌 것을 보면, 상동행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쳐지므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도 성장함에 따라 상동행동의 조절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현재 상동행동의 유무를 따지기보다는 과거 상동행동의 출연 시기와 빈도, 강도가 어떠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폐증 진단 면담지(ADI-R) 검사 문항을 보면, 상동행동이 현재 나타나지 않아도 어렸을 때 나타났던 경우에는 상동행동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자기자극행동(stimming)은 자기 자신을 자극하거나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상동행동도 이에 포함된다. 앨리스는 아무렇게나 노래를 만들어 부르거나 같은 소리를 리듬감 있게 내는 자기자극행동을 자주 한다. 하지만 자기자극행동 또한 (앨리스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외출 중에는 잘하지 않게 되었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치는 것을 본인이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자극행동의 유무를 파악할 때도 가정에서 양육자의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증상을 다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양육자가 자신의 감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지표로 아이를 판단하고 싶다면 자폐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과 가정에서 해볼 수 있는 간단한 자폐 검사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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